“배를 가르지 않고도 수술이 가능하다고요?”
작년 1월 베트남 국적의 레 쟝반(Giang Van Le·63)씨가 서울성모병원 비뇨의학과를 찾았다. 2년 전 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MRI) 검사 결과 신장에서 양성 종양을 발견했다는 레 쟝반씨. 암이 아니라는 말에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고 지내던 중 옆구리에 통증이 느껴졌고 재검사를 통해 신장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들었다. 신장암은 체내에서 소변을 만드는 세포들이 모여있는 신장(콩팥)에서 발생하는 암이다. 종양의 크기에 따라 신장의 일부를 절제하거나 전체를 다 들어내야 한다. 레 쟝반씨는 단순히 신장에만 암이 생긴 경우가 아니라 치료가 더욱 까다로웠다. 체내 정맥혈관 중 가장 큰 하대정맥에 암성 혈전이 침범한 상태였다.
하대정맥혈전을 동반하는 유형은 전체 신장암의 4~10% 정도에 불과해 흔하지 않다. 문제는 1년 생존율이 30%가 안될 정도로 치명적이라는 점이다. 종양과 혈전을 성공적으로 제거하면 5년 생존율이 50% 이상까지 올라가지만 비뇨기암 수술 중에서도 난이도가 높고 위험 부담이 크다. 온몸의 피가 심장으로 들어가는 하대정맥을 박리하고 결찰 및 절개해 혈전을 모두 제거해야 하는데 대량 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 자칫 수술 도중 혈전이 떨어져 나가면 폐나 뇌, 각종 장기에 색전증이 발생해 사망할 위험도 존재한다.
진단을 듣고 말을 잇지 못하는 레 쟝반씨를 본 베트남 현지 병원 주치의는 몇 년 전 학회에서 인상 깊게 들었던 홍성후(사진) 서울성모병원 비뇨의학과 교수의 발표 장면이 떠올랐다. 홍 교수는 지난 2016년 국내 최초로 하대정맥혈전을 동반한 환자를 개복수술 대신 복강경과 로봇을 이용한 최소침습수술로 시행하는 데 성공했다. 암환자의 배를 갈라 넓은 시야를 확보한 채 진행해도 까다로운 수술을 몇 개의 구멍만 내고 시행했다는 발표에 학회에 참석한 전 세계 외과의사들의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치료 방법을 찾기 위해 일본·싱가포르·한국 등 여러 나라의 명의를 수소문하던 레 쟝반씨는 원격진료를 통해 서울성모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작년 12월 병원의 원격진료 시스템 ‘보이닥’을 통해 홍 교수와 연결됐고 로봇수술이 가능하다는 말에 주저 없이 입국 절차를 밟았다. 홍 교수의 집도로 로봇을 이용한 근치적 신장적출술 및 하대정맥혈전제거술을 받은 레 쟝반씨는 수술 다음날부터 식사와 보행을 시작했고 나흘 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홍 교수는 “하대정맥혈전을 동반한 신장암은 비뇨의학과 뿐 아니라 혈관외과·흉부외과와 협진이 필요할 정도로 광범위하고 난이도가 높은 수술”이라며 “최근에는 혈관용 풍선을 이용해 수술의 위험성을 낮추면서도 신속하고 효과적인 수술이 가능해 졌지만 첫 수술 날짜를 잡아놓고 몇 주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털어놨다. 수술을 마치는 순간 집도의인 본인은 물론 어시스트·마취통증의학과 의료진·수술방 간호사들까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서울성모병원 비뇨의학과는 2009년 2세대 로봇수술기 다빈치 S시스템으로 전립선암 로봇수술을 시작했다. 2016년과 2018년 4세대 다빈치 Xi, 2021년 4세대 다빈치 SP 로봇수술기까지 총 4대를 갖추면서 신장암·방광암 등 고난도 암수술을 포함해 다양한 비뇨기 질환으로 적용 범위를 넓혔다.
비뇨의학과에서 시행된 로봇수술 5000례를 질환별로 살펴보면 전립선암이 2686건(54%)으로 가장 많았다. 신장암(1692건·34%), 방광암(350건·7%), 요관암(150건·3%) 등이 뒤를 이었다. 비뇨의학과장을 맡고 있는 홍 교수는 국내 최다 단일공 로봇수술 시행 기록을 보유 중이다.
단일공(SP·Single Port) 로봇수술은 글자 그대로 구멍(절개창)을 하나만 뚫어 진행되기 때문에 수술 후 흉터에 대한 부담과 출혈, 통증이 적다. 회복이 빠르면서도 정밀한 수술이 가능해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지만 수술을 담당하는 집도의의 숙련도가 요구된다. 홍 교수는 동료 의사들 사이에서 포기를 모르는 집념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개복수술로도 어려운 고난도 수술에 복강경·로봇 같은 최소침습 방식을 고집한다는 이유에서다. 오죽하면 “(본인의 생명을) 환자 생명과 맞바꾼다”는 말도 들었다.
홍 교수는 “환자 입장에서 로봇수술의 장점을 생각하면 안 할 이유가 없다”며 “처음 로봇수술기가 도입됐을 땐 고난도 술기를 하루빨리 연마하고 싶은 욕심에 엄지 손톱만한 크기의 종이로 학을 접는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로봇수술기를 이용해 쌀알만한 종이학을 접었던 경험을 떠올리면 아무리 까다로운 수술도 도전해 볼 용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최근 전립선암 수술의 대표적인 합병증인 요실금을 줄이기 위해 치골후공간을 보존하는 ‘레치우스 보존(Retzius-sparing) 근치적 전립선암 절제술’을 단일공 로봇으로 해냈다. 4세대 다빈치 SP 로봇수술기의 반전 모드 기능을 활용하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어 전 세계 최초로 성공시킨 사례다.
그는 “수술 후 환자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편해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의사로서의 책무 아니겠느냐” 며 “하는 일이 항상 최고의 결과를 얻을 수는 없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는 이어 “2021년 단일공 로봇 도입 이후 전 세계 최단기간에 수술 500례를 넘어설 수 있었던 건 비뇨의학과·외래·병동·수술실 구성원들 모두의 헌신과 노력 덕분”이라며 “최첨단 장비와 최고의 기술로 환자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