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야단법석] '기후위기'는 기우?…온실가스 감축에 팔 걷어붙인 사법부

헌법재판소, 아시아 최초 '기후 소송' 첫 선고 앞둬
"기후 운동은 유행이 아닌, 최소한의 삶을 지키는 수단"
1990년 시작된 기후 소송…법적으로 기후 문제 해결 나서  
독일 사법부 "정부 대응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못 미친다면
즉각적인 재검토 거쳐 감축 방안 다시 세워야"



기후 헌법소원 마지막 공개변론일인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후소송 원고 단체 및 공동 대리인단 공동 기자회견에서 최종진술자로 나서는 아기기후소송의 한제아 어린이가 메리골드 종이꽃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학교에서 기후위기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줬나요? 저희는 이미 학교에서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 어떤 일이 생기는 지를 배우고 있습니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 한제아 양(12)은 아기기후소송의 청구인 중 한 명이다. 한 양은 본인이 피부로 느끼는 기후 위기에 대해 더 이상 어른들이 대답을 피해선 안 된다며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최후 발언자로 나서 진술문을 낭독했다.


헌법재판소는 올해 아시아 최초로 기후 소송에 대한 선고를 앞뒀다.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 정책 등이 국민의 기본권을 위배하는지 여부를 사법부가 심판하는 것이다. 2020년 국내 첫 기후 소송이 제기된지 약 4년 만이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 21일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제42조 제1항 1호 위헌확인을 위한 2차 공개 변론을 모두 종료하고, 재판관들의 논의를 거쳐 추후 선고 기일을 정한다.


세계 최초의 기후소송은 1990년 미국에서 열렸다. 미국 코네티컷 주와 뉴욕 주를 포함한 주정부가 주요 전력 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했는데, 대기에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기후변화를 초래해 국민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게 청구인 측 주장이다.


대법원까지 간 해당 사건은 종국에 기각됐다. 당시 재판부는 기후변화 관련 문제는 사법부가 판단할 영역이 아닌 정치적 문제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기후변화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하려는 첫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최근 세계의 기후 관련 소송은 증가하는 추세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기후 변화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과 환경권, 행복추구권, 미래 세대에 기후 변화 피해를 전가한다는 점에서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게 주장의 골자다.


승소와 패소를 떠나 기후 관련 소송은 사회적으로 기후 변화에 대한 인식과 대응을 촉진하는 주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소송으로 정부는 물론 기업도 적극적으로 기후 변화 문제를 직면하고, 대응을 재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는 더 나아가 글로벌 기후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미 전 세계 사법부는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등 기후 관련 정책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명령하고 있다. 해당 정책이 법으로 정한 온실가스 목표를 달성하기에 여전히 부족하다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판단하는 추세다.


독일 베를린·브란덴부르크주 고등행정법원은 이달 16일 연방 정부의 기후 보호프로그램이 온실감스 감축 목표를 충족하기에 부족하다며 독일 환경행동(Deutsche Umwelthilfe, DUH)의 손을 들어줬다.


독일 정부는 지난해 10월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한 도이칠란트 티켓,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른 화물차 통행료 부과 등 부문별 감축목표 달성 방법을 종합한 기후보호 프로그램을 내놨다. 하지만 법원은 "해당 계획이 방법론으로 부족하고 비현실적인 전제에 근거했다"며 목표 달성 가능성을 재검토하고 감축 방안도 즉각 다시 세울 것을 명령했다.



기후 헌법소원 마지막 공개변론일인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청소년기후소송·시민기후소송·아기기후소송·탄소중립기본계획소송 공동 기자회견에서 최종진술자인 아기기후소송의 청구인 한제아 어린이가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1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마지막 변론 기일에는 초등학생과 청년을 비롯해 시민 대표들이 심판정에 서서 기후 변화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강조했다. 심판정에 서지 못한 이들은 공개 변론을 듣기 위해 뙤약볕 아래 대기열에서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기도 했다.


이날 최후 진술에 나선 김서경 씨도 청소년때부터 기후 운동을 이어왔다. 그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유행이나 약속이 아닌 우리 삶을 무너뜨릴 재난을 막기 위한 중요한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재판관과 정부 측 대리인들을 향해 헌법소원은 자신들이 던지는 '마지막 믿음'이고, 기후대응은 곧 최소한의 삶을 지키는 마지막 수단이 될 것이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지난 공개변론 당시 정부 측은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높게 세우고 실패하는 것보다 현실적인 목표가 낫다'며 청구인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기후 대응이 일어나더라도 정부가 이에 대한 대응을 충분히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국민을 보호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고 있단 것이다. 당장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 등을 고려할 때 탄소 배출을 무리하게 줄이는 것은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청구인과 정부 모두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기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표는 같다. 정부 역시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가 목표임을 거듭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양측의 목표가 같다면 정부 역시 기간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그 이행 과정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2030년까지 감축 목표가 30%에도 못 미친다면 2050년 탄소 제로 시대를 열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2030년 감축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대안은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2050년 탄소 제로 달성이 목표지만, 2030년 이후 감축 부담에 대한 기준은 공백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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