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대외정보기관 모사드(Mossad)의 수장이 팔레스타인 내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의혹을 조사하던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장에게 수사를 포기하라고 협박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영국 가디언은 28일(현지시간) 사안에 밝은 소식통을 인용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모사드를 이끌었던 요시 코헨 전 국장이 파투 벤수다 당시 ICC 검사장을 상대로 압력을 가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감비아 출신의 무슬림인 벤수다 전 검사장은 2015년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동예루살렘에서 자행된 전쟁범죄와 반인도 범죄 혐의에 대한 예비조사에 착수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움직임에 반발했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최측근으로 이듬해 모사드 국장에 취임한 코헨은 벤수다 전 검사장을 설득해 조사를 중단시키려 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코헨 전 국장은 2017년 뮌헨안보회의에서 처음으로 벤수다 전 검사장과 만나 짧은 대화를 통해 자신을 소개했다. 이후 벤수다는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코헨과 다시 마주한다. 2018년 미국 맨해튼의 한 호텔에서 조제프 카빌라 당시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과 회의하던 중 갑자기 벤수다를 제외한 ICC 관계자 모두에게 ‘방에서 나가라’는 요청이 있더니 그 방에 코헨이 불쑥 들어온 것이다. 이는 ICC가 이스라엘군 장병을 기소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명분 하에 고위급의 승인을 받아 진행됐으며 코헨은 네타냐후의 ‘비공식적 메신저’ 역할을 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처음 코헨은 벤수다 전 검사장을 친이스라엘 인사로 끌어들이는 데 초점을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벤수다는 2019년 말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혐의에 대한 전면적 수사에 나설 근거를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2021년 모사드 국장직을 내려놓을 때까지 최소 세 차례 벤수다와 접촉한 코헨은 갈수록 위협과 조작을 포함한 다양한 전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소식통들은 말했다. 벤수다의 남편을 몰래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가 하면 남편이 한 문제성 발언을 녹취해 외교가에 유포함으로써 벤수다 전 검사장의 신인도를 깎아내리려는 시도도 있었던 것으로 취재됐다. 이 같은 활동에 대해 브리핑을 받은 한 사람은 “비열한 전술을 사용했다”며 코헨의 행동을 스토킹에 비유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스라엘 측은 이러한 보도를 전면 부인했다. 이스라엘 총리실 대변인은 관련 질의에 대해 “우리에게 전달된 질문들은 이스라엘에 피해를 줄 목적이 담긴 많은, 거짓되고 근거 없는 의혹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코헨 전 국장과 벤수다 전 검사장 역시 언급을 거부했다고 가디언은 덧붙였다.
ICC는 2021년 요르단강 서안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영토에 ICC의 사법 관할권이 미친다고 판결했다. 벤수다는 그 직후 팔레스타인 영토 내에서 이뤄진 전쟁범죄에 대한 수사를 공식 개시한다고 발표하고 3개월 뒤 임기 만료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발발한 것을 계기로 관련 수사를 본격화한 카림 칸 현 ICC 검사장은 이달 20일 네타냐후 총리와 하마스 지도부 등을 상대로 전쟁범죄 등 혐의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