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野 입법 폭주→대통령 거부권 무한반복…막 내린 21대 국회 '정치 실종'

尹 무더기 거부권…취임후 14번째
與 "野 결과 뻔히 알면서 밀어붙여"
野 용산 몰려가 "입법권 침해" 맹공
주말 대규모 장외집회로 여론몰이
22대 국회도 무한정쟁 악순환 우려

29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박찬대(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대통령 수사 외압 의혹과 거부권 행사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21대 국회가 임기 마지막 날까지도 거대 야당의 입법 독주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이 정면 충돌하면서 막을 내렸다. 2022년 대선 이후 야당이 다수 의석을 앞세워 쟁점 법안을 강행 처리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여당의 건의를 받아들여 거부권 행사로 법안을 무력화하는 모습이 지난 2년 내내 도돌이표처럼 반복됐다. 4·10 총선에서 압승한 야당이 입법 독주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만큼 22대 국회에서 또다시 여야의 무한 대치 구조가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9일 국회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전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5개 법안 중 4개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공식 건의했다. ‘선구제 후회수’ 방안을 담은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과 민주화운동 관련자 지원을 확대하는 민주유공자법은 여당이 이미 예고한대로 거부권 건의 대상에 올랐다. 여기에 농어업회의소법과 한우산업지원법도 포함됐다. 추 원내대표는 이들 법안에 대해 “법적 검토, 사회적 논의, 여야 합의도 없는 ‘3무 법안’”이라고 맹비난했다.


다만 야당이 단독 처리한 법안 가운데 세월호피해지원법은 거부권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정치적 부담을 줄이려 했다. 앞서 윤 대통령이 법안 10건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 상황에서 추가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추 원내대표는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 결과가 거부권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서 “이것을 뻔히 알면서 밀어붙이는 야당 행태부터 지양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이날 오후 곧바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4개 법안에 대한 재의 요구안을 의결하고 윤 대통령이 곧바로 이를 재가했다. 야당이 21대 국회 임기 만료 하루 전에 쟁점 법안을 단독 처리한 만큼 정부도 국회 임기 만료 전 재의 요구 절차를 서두른 것이다. 막판 무더기 거부권 행사에 대해 비판 여론이 일 수 있지만 야당이 거부권 유도를 목적으로 통과시킨 ‘악법’을 수용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이번이 일곱 번째로, 거부권 행사 법안 수는 총 14건으로 늘어나게 됐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4개 법안은 21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민주당은 22대 국회가 열리면 192석의 범야권 의석을 앞세워 ‘채상병특검법’을 비롯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들의 입법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 뜻에 맞서 대통령이 아무리 거부권을 남발해도 끝까지 막아내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간호법,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대장동 50억 클럽)’, 방송 3법, 노란봉투법 등도 모두 민주당의 재입법 추진 대상이다. 아울러 민주당은 이날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4개 법안에 대해 22대 국회 내 재표결 가능성까지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전례가 없고 의견이 갈리지만 국회사무처 유권 해석 등을 통해 가능 여부를 검토하면서 대응 전략을 고민 중”이라며 “헌법재판소까지 가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결국 22대 국회에서도 거대 야당의 입법 강행과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거부권 행사에 대한 총공세를 펼쳤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열 번의 거부권도 모자라 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대통령이 정상인가”라며 “국회 입법권을 심각히 침해하고 삼권분립 정신을 뒤흔드는 반민주적 폭거를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외쳤다. 민주당은 이번 주말 대규모 장외 집회를 열고 대여 공세의 수위를 높일 계획이다.


한편 21대 국회는 끝까지 협치 없이 막을 내리면서 최악의 법안 처리율이라는 오명을 썼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 2만 5857건 중 처리된 법안은 9479건으로 처리율이 36.7%에 그쳤다. 19대(44.9%)와 20대(37.9%) 국회와 비교해도 역대 최저치다. 국민연금 개혁안과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 인공지능(AI) 기본법 등 주요 민생 법안들은 자동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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