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의 이혼소송 2심 결과가 발표된 뒤 SK그룹 전체는 충격에 휩싸였다. 사상 유례없는 천문학적인 재산 분할에 최 회장 개인은 물론 SK그룹 전체 지배구조가 흔들릴 위기에 빠질 수 있어서다.
당장 핵심은 최 회장이 1조 3808억 원에 이르는 현금을 어디서 마련하느냐는 문제다. 법원은 30일 판결에서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역시 재산 분할 대상으로 인정해 약 4조 원에 이르는 두 사람의 합계 재산 중 35%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지주사 지분을 직접적으로 노 관장에게 지급하라는 결정은 아니지만 여기에 상응하는 현금을 줘야 한다는 의미다. 최 회장 입장에서는 천문학적 현금을 확보해야 하는 숙제를 안은 셈이다.
재계에서는 보유 현금이 많지 않은 최 회장이 실질적으로 지분 매각에 나서는 방안 외에는 대안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 회장이 현재 보유한 SK㈜ 지분은 17.73%로 약 2조 1000억 원어치다. 다만 최 회장이 SK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주사 지분 매각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 때문에 최 회장이 갖고 있는 SK실트론 주식 29.4%가 주목받고 있다. 최 회장은 2017년 SK가 LG로부터 실트론을 인수할 당시 참여해 29.4%를 확보했다. 인수 당시 지분 가치는 2600억 원으로 현재는 이보다 가치가 뛰었을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이외에도 SK케미칼(3.21%), SK디스커버리(0.12%) 등의 지분을 갖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분을 팔더라도 대랑 지분 매각은 할인을 해줘야 하고 또 차익에 따른 양도세가 발생한다”며 “어떤 식으로든 지주사 지분을 처분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최 회장의 그룹 장악력에 누수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최악의 경우 경영권을 노린 외부의 적대적 공격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계 헤지펀드 소버린이 일으킨 소버린 사태가 재연될 수 있는 것이다. 2003년 3월부터 SK㈜ 지분 확보에 나선 소버린은 15% 가까운 지분을 확보했고 같은 해 8월 최 회장에게 경영권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했다. 당시 소버린에 대한 국내 여론의 비판이 컸고 이 여파로 SK에 대한 우호지분이 증가하면서 최 회장은 2005년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최종 승리했다.
이후 SK그룹은 소버린 같은 적대적 합병·매수 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우리사주 지분을 높이는 등 지배구조 개선에 나섰고 현재의 지배구조를 완성했다.
다만 최 회장 가족이 들고 있는 주식이 우호지분으로 경영권 위협을 방어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말 현재 최 회장의 동생인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과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은 SK㈜ 주식을 각각 6.58%, 0.37%를 보유하고 있다. 특수관계인 지분만으로도 경영권 방어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로 SK의 승계 작업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흔들리는 지배구조를 다잡기 위한 대응책의 방편으로 후계 구도의 확립이 떠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1960년생으로 올해 64세인 최 회장은 재계 총수 가운데 젊은 편으로 아직 후계 구도가 수면 위로 드러난 적은 없다. 지난해 10월 미국 블룸버그와 인터뷰를 하며 최 회장이 “후계 구도에 대해 생각하고 있고 준비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 전부다. 현재 세 자녀(최윤정·민정·인근)가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으나 지분 비중은 사실상 없다.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 본부장은 지난해 말 임원 인사를 통해 신규 임원이 됐고 차녀 최민정 SK하이닉스 팀장은 회사를 퇴사하고 미국에서 인공지능(AI) 기반의 헬스케어 스타트업인 ‘인테그랄 헬스’를 창업했다. 아들이자 막내인 최인근 씨는 SK E&S 북미 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다.
상속을 통한 승계는 사실상 어렵다. 최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가진 SK 지분은 상속을 거치면 크게 낮아지게 된다. 또한 50%의 증여세율, 상속에 대한 할증 세율 20%까지 적용되면 상속자들은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