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정 중 땀 한방울이라도 웨이퍼에 떨어지면 불량이 됩니다.”
김학승 SK실트론 부사장은 ‘초순수’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한 마디로 정리했다. 초순수는 반도체 웨이퍼(원판)의 불순물을 씻어내기 위해 필요한 물이다. 말 그대로 ‘초’정밀 ‘순수’한 물이다. 물의 구성요소인 수소와 산소만 남기고 무기질과 박테리아 등을 전부 제거해 총유기탄소량(TOC)의 농도는 1ppb(10억분의1, 0.0000001%) 이하로 만들어 수질을 관리하게 된다. 땀 한방울은 물론 어떤 불순물도 용납이 안되는 ‘반도체 생명수’인 셈이다. 이처럼 반도체 공정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한국은 웨이퍼를 처음 생산한 1983년 이후 41년 간 초순수를 일본에서 수입했다.
진입 장벽이 높다보니 개발 시도를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환경부를 중심으로 한국수자원공사와 SK실트론 등이 합심해 2021년부터 2025년까지 국고 324억 5000억 원, 민간 118억 9000억 원 총 443억 4000억 원을 투자해 국산화에 나섰다. 사업기간은 내년까지였지만 국산화 연구개발(R&D)에 착수한 지 3년 만에 실증프랜트 설계·시공을 완료하고 올해 2단계인 설계·시공·장비까지 모두 국산화 작업에 들어갔다. 하반기부터는 운영과 제품 검증을 거쳐 이르면 8월 양산용 웨이퍼에 국산 초순수를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예정보다 1년이 빠른 개발 속도다.
경북 구미시에 위치한 SK실트론 2공장을 29일 찾았다. 국내산 1호 초순수 실증플랜트가 설치돼 국산 초순수 기술이 집약된 곳인 만큼 공장 입구에서부터 보안에 극도로 예민했다. 공장 내에는 일본 설비를 통해 초순수를 생산하는 플랜트 건물이 5호까지 설치돼 있었다. 국산화 초순수 생산 설비는 6호 시설에 설치돼 수질분석과 제품검증을 24시간 진행하고 있었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가정에서 정수기를 사용할 때 물을 사용하는데 비용이 발생한다기보다 필터 교체, 수질 검사, 임대료 등의 비용이 발생하는 것처럼 초순수를 생산하기 위해 들여놓은 일본 설비에는 유지관리에 필요한 비용이 수시로 발생했다”고 말했다. 6호 플랜트 건물에도 일본 설비와 국산 설비가 나란하게 설치돼 한눈에 한·일 설비 비교가 가능했다. 일본어로 쓰인 장치 옆에 국내 중소기업인 세프라텍이 눈에 들어왔다. 초순수 국산화에 환경부와 수자원공사,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의 기술과 노력도 같이 녹아들어 성과를 만들었다는 게 입증됐다. 그동안은 국제 분업에 따라 일본산을 쓰는 게 더 경제적이라는 판단에서 개발 시도에 나서지 않았지만 반도체 관련 소재의 경제 안보 차원에서 국내 기술 확보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6호기 실증 플랜트 건물 4층에서 진행되는 초순수 작업은 자외선을 통해 물속의 유기물을 이온으로 분해하는 공정과 분리막을 통해 진공상태에서 물속 기포를 제거하는 장치를 거쳐 이온을 제거해 물을 생성하는 식으로 단계별로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머리카락 두께의 1/1000크기 구멍이 있는 UF막을 통해 초미세 입자마저 최종 제거하면 초순수를 얻게 된다. 공정 순서별로 전기·통신 작동여부를 테스트하고 공정 내 오염물 세척 상태와 누수 여부 등을 모니터링 상황실에서 24시간 확인하며 국산화 작업은 순항하고 있었다.
올해 초 1단계 작업이 완료되고 2단계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독점에 가까운 시장 지배력을 가진 일본도 긴장감이 커졌다. 탁세완 수자원공사 산업용수처장은 “일본은 초순수 개발에 수십년이 걸렸는데 한국이 3년도 안돼 개발에 성공했다며 상당한 관심을 나타냈다”며 “일본 주요 언론에서 해당 소식을 주요 기사로 도배했다”고 설명했다.
경제안보 측면뿐만 아니라 초순수 시장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어 시장성도 충분하다는 평가다. 이경혁 K-water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지난 2021년 해외에서 21조 원 시장이었 초순수 해외시장은 불과 3년새 23조 1000억 원 시장으로 커졌다”며 “국내에서도 2040년 2조 3000억 원의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던 기존 전망을 1년 새 4조 원 시장으로 수정할 만큼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증플랜트가 성공함에 따라 구미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초순수 양산플랜트도 건설될 것으로 보인다. 초순수플랜트 설계에서 시공까지 전 과정에 대한 100% 기술자립이 완료되면 구미반도체특화단지도 힘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단기간 내 선진국과 기술격차 해소를 위해 관련 소‧부‧장 개발, 실증 및 검증, 수질분석, 교육이 가능한 초순수 집적단지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소부장시험센터, 초순수플랜트, 분석센터, 폐수재이용기술센터, 인증·R&D등 허브센터의 집적단지가 구성되면 해외수출의 기반도 동시에 갖추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