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없이 암세포만 타격” 췌장암·간암도 꿈의 암치료 받는다

연세암병원, 28일 회전형 중입자치료기 가동
연내 폐암·두경부암 등 치료 대상 확대 계획

금웅섭(오른쪽) 연세암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와 의료진이 정확한 치료를 위해 중입자치료 장비를 조정하고 있다. 사진 제공=연세암병원


전립선암에 이어 난치암의 대명사로 꼽히는 췌장암과 간암 환자도 중입자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국내 유일하게 중입자 치료기를 가동하고 있는 연세의료원이 치료 대상 암종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암병원은 지난 28일 췌장암 3기 환자 김모씨(47)를 대상으로 회전형 중입자 치료기를 활용해 첫 치료를 시행했다고 31일 밝혔다. 간암 3기 환자 이모씨(73)도 이날 중입자 치료를 받았다. 진단된 암종류와 선행 치료 등에 따라 세부 일정은 조금씩 달라진다. 앞서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항암치료를 거친 김씨는 매주 네 번씩 3주간 총 12회 치료를 받는다. 이씨는 수술 후 두 차례 재발됐는데 이날부터 일주일 동안 4회 치료로 끝낼 계획이다.


중입자 치료는 탄소 원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암세포에 쏴서 치료하는 방식이다. 정상 세포는 피하고 암세포에만 고선량 방사선을 집중할 수 있어 부작용은 줄이고 치료 효과는 높일 수 있다. 치료 기간도 대폭 단축된다.


중입자치료는 X선이나 감마선을 이용하는 기존 방사선치료와 달리 무거운 탄소 원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다음 암세포에 쏴서 치료하는 방식이다. 빔이 인체를 통과할 때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가 암조직을 지나치는 순간 에너지 전달이 절정에 이르는 ‘브래그 피그(Bragg Peak)’ 원리를 이용한다. 정상 세포는 피하고 암세포만 골라 고선량 방사선을 집중할 수 있다. 부작용을 줄이면서도 치료 효과는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치료 기간도 대폭 단축된다고 해서 ‘꿈의 암치료’라고도 불린다.


연세의료원은 2022년 말 약 3000억 원을 들여 지하 5층, 지상 7층에 외래 진료·검사·중입자치료 시설을 갖춘 중입자치료센터를 건립했다. 국내 의료기관 중 유일하게 고정형 중입자 치료기 1대와 회전형 중입자 치료기 2대를 보유 중이다. 중입자치료는 췌장암, 간암, 육종 등 난치암 치료 효과가 강력하다고 알려졌지만 치료기 1대 가격이 3000억 원에 달하는 데다 유지비용도 상당해 아직 보편화되지는 않았다.


중입자 치료기를 보유한 나라는 일본을 비롯해 중국·독일·이탈리아·대만·한국 등 7곳 정도다. 연세암병원은 작년 4월 국내 최초로 중입자 치료를 시작했다. 당시 가동한 치료 기기는 탄소 입자의 조사 각도가 정해져 있는 고정형이었다. 그동안 주변에 영향을 받는 다른 장기가 없고 호흡과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전립선암 치료에만 중입자 치료를 적용한 이유다.


이날부터 가동한 회전형은 치료기 안에 누워있는 환자의 암 위치에 맞게 적절한 각도로 회전할 수 있다. 360도로 탄소 입자를 쏠 수 있어 다른 장기와 인접한 췌장, 간 등에 생긴 암치료에도 적용 가능하다. 환자가 숨을 쉴 때마다 암이 함께 움직여 치료 난도가 높은 폐암 환자에게도 곧 중입자 치료를 적용하고 연말까지 두경부암 등 여러 암종으로 치료 대상군을 늘릴 계획이다.


금웅섭 연세암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췌장암과 간암은 주변에 정상 장기가 많고 발견이 늦는 경우가 잦아 수술이 어려운 상황이 많다. 이런 환자들도 중입자치료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기존 항암치료와 새로운 중입자치료의 조화를 이뤄 최고의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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