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은 눈먼 돈" 기업형 범죄 판치는데…중형 선고는 6%뿐

■위험수위 넘어선 보험사기 <상> 지능·조직화 되는 범죄
의사·브로커·보험설계사 등 결탁
과잉진료 이용 병명도 점차 늘어
적발돼도 94%는 3년 미만 징역
중죄 인식 낮아…"강력 처벌해야"


해마다 보험사기가 급증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보험금은 눈 먼 돈’이라는 그릇된 인식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매월 보험금을 납부해도 사고가 없이는 받지 못한다는 데 따른 일종의 보상 심리와 ‘한 방에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사행심이 맞물리면서 보험사기가 급증하고 있다는 얘기다. 폭행·강도 등 범죄와 달리 보험사기에 대해 다소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도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그만큼 ‘중죄’라는 인식도 크지 않아 보험사기가 급증하면서 점차 지능·조직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법조계 안팎에서 보험사기는 처벌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대정 법무법인 중부로 대표 변호사는 “의사의 경우 환자 수가 줄어드는 등 경영이 어렵다 보니 브로커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는 등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있다”며 “국고에서 나오는 자금이라면 (범죄라는 생각에) 위험하다고 여기겠지만 보험금은 다르게 생각해 죄의식이 약해지는 듯하다”고 진단했다.


백영화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원도 “보험사기가 증가하는 데는 보험계약의 사행성과 보상 심리, (보험사기에 대해) 사회적으로 관대한 분위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듯 보인다”며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재산 범죄가 한층 늘 수 있다는 부분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보험사기 범죄가 지닌 특성과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국내 경제 상황까지 겹치면서 보험사기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 금액은 지난해 1조 1164억 원을 기록, 5년 연속 상승했다. 이는 2019년(8809억 원)보다 2355억 원이나 늘어난 금액이다. 보험 사기 적발 인원도 10만 9522명으로 지난 5년 내 최고치를 나타냈다.


게다가 보험사기 수법도 한층 교묘해지고 있다. 의사, 브로커, 가짜 환자, 보험 설계사 등의 역할을 나누는 일종의 ‘기업형’까지 등장했다. 거짓·과잉 진료 등에 이용되는 병명도 해마다 다양해지고 있다. 실제로 충남경찰청은 지난해 6월 보험사기방지특별법(보험사기방지법) 위반으로 천안에 위치한 3개 여성 병원 소속 의사 3명과 간호사 20명, 보험 설계사 4명, 가짜 환자 등 총 342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자궁근종 레이저 시술(하이푸), 발톱 무좀 등을 치료한 것처럼 8378차례에 걸쳐 거짓 진료비 영수증을 발급한 혐의를 받는다. 이를 통해 보험사에서 받은 금액만도 약 23억 원에 달한다. 부산경찰청도 성형수술을 하고도 무좀 치료를 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보험금을 타낸 성형 전문 의원 원장과 브로커 5명, 환자 84명 등 90명을 지난해 5월 검찰에 불구속 송치한 바 있다. 울산경찰청도 2015년 5월~2022년 4월 미용 목적의 연성섬유종(일명 쥐젖) 제거 수술을 하고도 피부 양성종양 절제 수술을 한 것처럼 거짓 확인서를 발급한 의사와 보험 설계사 35명 등을 검거한 바 있다. 이들은 보험사에 제출한 허위 확인서로 보험금 2억 6000만 원을 타낸 혐의를 받는다.


문제는 보험사기에 악용되는 병명은 물론 규모도 기업형으로 진화하고 있지만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9년 8.47%(839명)에 그쳤던 보험사기방지법 위반 혐의에 대한 기소율은 지난해 15.15%를 기록, 두 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 반면 같은 기간 불기소율은 37.42%에서 23.30%로 감소했다.


수사 단계에서 죄가 없다는 판단을 받는 이들이 줄어드는 데 반해 보험사기방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는 피고인들은 차츰 늘고 있는 셈이다. 발생 사건이 급증하면서 법의 심판대에 오르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으나 처벌 수위는 여전히 낮다.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보험사기 현황 및 시사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심에서 죄가 안정돼 ‘옥살이’를 하는 피고인은 5명 가운데 1명(20.2%)에 불과했다. 절반 가까이(43.8%)는 벌금형에 처해지고 27%가량은 집행유예로 감옥행을 면했다. 그나마 실형이 선고돼도 3년 이상 징역은 2021년 기준으로 단 6%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1년 미만(47%)이거나 1년 이상 3년 미만(47%)의 비교적 가벼운 징역이 선고됐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기 범죄의 수법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험사기의 경우도 따로 세분화하거나 양형 기준을 나누는 등 변화가 필요하다”며 “처벌 강화 등 보험사기를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백 선임연구원은 “보험사기는 초범도 많은 데다 수법이 소극적인 연성 사기도 많아 정상을 고려할 상황이 많다는 점에서 약하게 처벌될 인자가 많기는 하다”면서도 “보험사기방지법 제정 취지를 고려하면 보험사기 근절을 위해서라도 통상의 사기 범죄와는 달리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험사기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보험사기방지법을 만든 만큼 기존 사기와 다르게 처벌 수위를 한층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2016년 3월 제정된 보험사기방지법 1조(목적)에는 ‘보험사기 행위의 조사·방지·처벌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보험계약자, 피보험자, 그밖의 이해관계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보험업의 건전한 육성과 국민의 복리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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