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내 집 같은 곳에서 편안한 노후를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


오랫동안 복지 업무를 맡다 보니 관련 시설을 평가하는 나름의 기준이 생겼다. 대표적인 것이 냄새다.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시설이 있는가 하면 비릿한 냄새가 배어 있는 곳도 있다. 하나를 더 꼽자면 거주자와 종사자들의 표정이다. 편안한 표정의 얼굴이 많이 보이는 시설이 있고 대체로 표정이 없거나 경직된 시설도 있다. 둘 다 단시간에 꾸며낼 수 없는 요소다. 향기를 풍기고 표정이 밝은 곳이 좋은 시설이다.


지난해 6월 독일과 스웨덴의 노인시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의 어르신들은 밝고 넓은 거실에서 함께 노래하고 놀이 프로그램을 즐겼다. 끼니때면 함께 모여 식사를 했다. 그리고 밤이 되면 각자 방으로 돌아가 쉬었다. 각 방들은 모두 1인실이거나 부부가 함께 쓰는 2인실로 옛집에서 가져온 물건으로 가득했다. 젊은 시절의 부부 모습, 자녀나 손자녀와의 행복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걸린 방은 시설이라기보다는 일반 가정에 더 가까웠다.


한국은 어떠할까. 초고령 사회를 목전에 둔 만큼 행복한 노후를 위한 다양한 시도가 한창이다. 먼저 사생활을 지킬 수 있도록 1~2인실 위주로 구성하고 살던 집처럼 편안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유니트케어’ 사업이 다음 달부터 시작된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계시는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는 ‘환자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존엄케어가 시행 중이다. 존엄케어란 냄새나 욕창, 낙상, 신체 구속이 없고 기저귀와 침대에서 탈피한 ‘4무2탈’을 목표로 한다. 마지막까지 스스로 움직이는 데 주안점을 둔 덕에 임종 직전의 환자가 걸어서 퇴원하거나 피부 괴사가 진행 중이던 욕창 환자가 완치되는 좋은 사례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실버타운도 다양화하고 있다. 올해 초 다녀온 지방의 한 실버타운은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를 겨냥해 20여 평의 아파트를 2억 원 중반에 임대·분양하고 하루 두 끼를 제공하면서 관리비 포함 1인 기준 100만 원, 부부는 150만 원 남짓에 거주가 가능했다. 시애틀과 시드니에서 살다가 오신 어르신도 있었는데 외국과 달리 따뜻한 온돌방에서 지내고 미역국이나 김치찌개를 맘껏 먹으면서 모국어로 편히 이야기하는 게 너무 좋다고 하셨다.


시대의 변화에 맞는 정책도 도입되고 있다. 분양형 실버타운을 인구감소지역 89개 시군구에 한해 재도입하고 도심지 무주택 노인 가구를 위한 고령자복지주택을 연 3000가구 공급한다. 침대에 누워 계신 어르신의 배변 처리, 세척, 건조를 자동으로 관리해주는 배변케어로봇도 개발하고 있다.


노인 인구 1000만 시대를 맞이해 정부는 존엄케어가 곳곳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행정·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 한다. 전체 인구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커지는 만큼 존엄하고 행복한 노후는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다. 독일과 스웨덴에서 만난 노인들의 편안한 미소가 우리 어르신에게도 계속 나타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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