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한 풀 꺾인 게 지표로 확인된 한 주였습니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7%를 기록하며 둔화 흐름과 함께 2개월 연속 2%대를 이어갔습니다. 정부는 하반기에는 전체 물가가 2%초중반대로 더 안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체감물가입니다. 배 가격이 역대 최대 상승률을 경신하는 등 과일류 상승세는 여전하고, 국제유가 상승 여파로 석유류도 3개월 연속 뛰며 16개월 만에 최대 증가폭을 기록하는 물가 상승 압력은 여전한 상황입니다. 특히 서민 체감의 바로미터인 외식 물가는 여전히 높습니다. 저소득층일수록 지출 비중이 높은 외식 물가는 36개월 연속 전체 물가를 웃돌고 있습니다. 물가가 꺾였다는 걸 비웃기라도 하듯 외식물가가 잡히지 않자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가 팔을 걷었습니다. 주범을 찾은 것인데 치킨, 햄버거, 김밥, 떡볶이 등이 10순위에 모두 있었습니다. 먹거리 대표격인 이들 품목이 주범이다 보니 물가 지표가 2%대로 둔화됐다는 사실이 체감되지 못할 수 밖에 없는 형국입니다.
통계청이 지난 4일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4.09(2020년=100)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7% 올랐습니다. 정부는 ‘3월 물가 정점론’을 펴고 있습니다. 3월 이후 물가 상승세가 하락 전환했다는 자신감도 느껴집니다. 실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 2.8%에서 2∼3월 3%대(3.1%)로 높아진 뒤 지난 4월(2.9%)부터 다시 2%대로 둔화됐습니다. 상승률은 지난해 7월(2.4%) 이후 10개월 만에 가장 낮았고 한 달 전 4월(2.9%)과 비교해 0.2%포인트 낮아졌습니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 지수들은 2%대 초반까지 상승 폭이 둔화했습니다.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한 근원물가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2.0% 오르면서 전달(2.2%)보다 0.2%포인트 낮아졌습니다.
이 같은 물가 둔화가 체감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외식물가 즉 먹거리 가격 상승세가 여전한 탓입니다. 실제 상반기 내내 사상최대 상승률을 기록한 사과, 배 등 과일 가격이 서민들을 여전히 괴롭히고 있습니다. 지난달 외식 물가 상승률은 2.8%로 전체 소비자 물가 상승률 평균치(2.7%)보다 0.1%포인트 높았습니다. 2021년 6월부터 36개월째입니다.
생선, 해산물, 채소, 과일 등 기상 조건이나 계절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큰 55개 품목 물가를 반영하는 신선식품지수도 지난해 같은 달보다 17.3% 오르며 8개월 연속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신선식품지수 상승률이 두 자릿수로 가장 오래 지속된 경우는 2010년 2월부터 2011년 3월까지 14개월 간이었는데 못지 않게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결국 소비자단체가 외식물가를 끌어올린 범인 색출에 나섰습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는 외식물가를 상승시킨 외식 품목을 색출하기 위해 통계청 외식물가 지수를 토대로 분석해 지난 7일 발표했습니다. 기여도 순으로 치킨, 햄버거, 김밥, 떡볶이 등이 10순위에 모두 있었습니다. 이들 품목 모두 2024년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최소 5.2%가 상승했습니다.
구내 식당 외에 단일 메뉴 품목으로는 치킨의 기여도가 가장 높았습니다. 주요 프랜차이즈 브랜드별로 2~3년에 한 번씩 가격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사)소비자공익네트워크의 2023년 조사에 의하면 최근 3년 동안 교촌, BBQ, bhc의 평균 가격 인상률은 12.6%에 달했습니다. BBQ는 지난 6월 4일 대표 메뉴인 황금올리브치킨을 2만 원에서 2만 3000원으로, 그 외 일부 메뉴들의 가격을 평균 6.3% 올렸습니다. 교촌은 지난해 4월, bhc는 같은해 12월 이미 가격 인상을 단행했습니다. 심리적 저항선이던 치킨 가격 2만 원이 깨진지는 오래입니다. KFC도 지난 5일부터 오리지널 치킨, 핫크리스피 치킨, 핫크리스피 통다리 1조각 가격을 300원 올렸습니다.
원재료인 김 가격이 오르며 가격 상승의 우려가 높은 외식 메뉴로는 김밥도 꼽혔습니다. 김밥 물가는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약 6.0% 상승했습니다. 지방물가정보에 의하면 4월 전국 김밥 평균 가격은 평균 3000원이 넘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외식 메뉴 중 계절적 특성이 큰 냉면은 대체로 2분기에 집중적으로 가격이 올라 소비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여름에 가격 부담이 큰 제품으로 나타났습니다. 통계청의 냉면 물가는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5.9%가 오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기준 냉면 한그릇 평균 가격은 1만 1692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 923원)에 비해 이미 7%가 올랐습니다.
더구나 하반기 먹거리 가격을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이미 이달 들어 초콜릿과 콜라·사이다, 김, 간장 등 각종 가공식품과 음료, 프랜차이즈 메뉴 가격이 줄줄이 올랐습니다. 롯데웰푸드는 지난 1일부터 가나 초콜릿 등 17종 제품 가격을 평균 12% 인상했습니다. 조미김 시장 1위인 동원F&B는 김 가격을 평균 15% 정도 올렸고, 국내 간장 시장 1위 업체인 샘표식품은 간장 제품 가격을 평균 7.8% 올렸습니다. 기업도 참을 만큼 참았다는 하소연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원자재, 원재료 값 상승을 더이상은 견딜 수 없다는 겁니다.
기업, 소비자가 윈윈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월 소비자물가 발표 직후 “국민들이 느끼는 생활물가와 장바구니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기업 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함께 더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업의 원가부담도 가계의 물가 부담도 모두 경감될 총의가 모아지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