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의협·전의비… 계속 돌아가는 의료계 ‘총파업’ 시계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이달 17일부터 무기한 집단 휴진을 결의한 가운데 서울대병원장이 “허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와 환자단체도 서울의대 교수들의 집단 휴진 결정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는 대정부 강경 투쟁 찬반 투표 결과를 9일 전국의사대표자대회에서 발표하고 집단행동 시기를 조율할 것으로 보이며, 서울대 외 다른 의대로도 총파업 흐름이 확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환자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서울의대 ‘집단 휴진’, 다른 의대로도 번지나

의료계의 강경 투쟁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의협은 7일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으로 촉발된 의료농단이 장기화함에 따라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위한 의료계 결집을 위해 9일 전국의사대표자대회를 개최한다”고 이날 밝혔다. 투표 결과와 함께 대회원 및 대국민 담화문 발표, 투쟁선포 등의 순서가 잡혀 있다. 투표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의협의 투표율이 이례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총파업 등 단체행동 참여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된다.


의협은 4일부터 이날 자정까지 회원 12만 9200명을 대상으로 대정부 강경 투쟁 찬반 투표를 진행한 가운데 이날 정오 기준 투표율이 50%를 넘어섰다. 올 3월 임현택 회장이 당선될 당시 투표율이 33% 선이었음을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투표에 참여한 의사들 대부분이 강경 투쟁에 찬성한 것으로 파악된다. 채동영 의협 홍보이사는 “개원가에서는 ‘날짜만 달라’는 분들도 많고 어떻게든 선배들이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들을 하고 계신다. 각 대학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대 이외 다른 의대 교수들도 집단행동에 참여할지 관심이다. 전국 20개 의대 소속 교수들이 참여한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총회를 열어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와 뜻을 함께 한다”며 “의협 투표 결과에 따라 9일 전국의사대표자대회에서 발표될 집단 행동 방침을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서울의대 집단행동에 대해 지지 의사를 전하며 각 대학별로 향후 행동방향을 논의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주요 대학병원 교수들도 ‘전체 휴진’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고대 안암병원·구로병원·안산병원 등이 속한 고려대의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회의를 열고 전체 교수를 대상으로 전체 휴진 찬반 투표 실시 여부를 결정한다. 세브란스병원 등이 속한 연세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전체 교수를 대상으로 전체 휴진 투표를 진행할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등이 속한 성균관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6시 긴급회의를 열고 향후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서울성모병원 등이 속한 가톨릭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다음 주중 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대다수 국민들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은 의료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달 28~29일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85.6%는 "의사들은 집단행동을 중단하고 환자 곁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지지한다는 비율은 12%에 그쳤다.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대병원장 “집단휴진 허가하지 않겠다”

국무총리실은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오는 9일 기획재정부·교육부·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배석한 가운데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미 내년도 의대 정원 증원이 마무리되고 전공의에 대한 사직서 수리 및 행정명령 철회를 발표한 상태다. 그럼에도 의료계가 전공의 면허정지 행정처분의 ‘완전 취소’를 요구하며 집단행동을 다시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자 이에 대응하려는 목적이다. 브리핑에서는 의료계 총파업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의료개혁에 대해 국민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하는 내용도 담길 수 있다. 국민들이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이 확정되면서 의료개혁 문제가 일단락됐다고 생각했는데, 의료계가 총파업을 예고하면서 혼란스러울 수 있으므로 의료개혁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한다는 취지다.


서울대병원은 의대 교수들의 집단 휴진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은 7일 서울대병원 전체 교수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무기한 진료를 중단하겠다는 결정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주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결정이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환자 진료가 중단되지 않기를 간곡히 요청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특히 중증 환자와 암 환자 등 심각한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대다수인 우리 병원의 진료 중단은 환자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며 “국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서울대병원이 이뤄낸 성과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서울대병원장으로서 비대위의 결정을 존중해왔지만 이번 결정은 동의하기 어렵고 집단 휴진은 허가하지 않겠다”며 “휴진을 통한 투쟁보다는 대화를 통한 중재자의 역할을 해주실 것을 부탁한다. 이러한 형태의 투쟁은 국민과 의료계와의 반목을 심화시키고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의료에서 멀어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고 강조했다.


환자단체들의 반응은 더 절박하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서울의대 교수들이 의료개혁 심포지엄을 열어 국민과 함께 바람직한 의료에 대해 고민해보겠다고 해서 희망을 걸었다. 그렇게 말하고 며칠 뒤에 사직을 한다, 집단 휴진을 한다고 하는 행동이 반복되다 보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는 “4개월째 환자의 불안과 피해를 도구로 정부를 압박하는 의료계의 행보가 계속되고 있는데, 너무 국민을 의식하지 않는 것 같다”며 “잘못 없는 환자에 피해를 주는 일은 그만하고 의료계와 정부가 합의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등 중증질환 환자단체 연합인 한국중증질환연합회도 7일 입장문에서 서울의대 교수들의 결정을 “환자 생명권을 박탈하는 비인도적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적정한 치료시기를 놓친 환자들이 얼마나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하며 “의료현장을 떠난 의대 교수들을 즉각 해직하고 양심적인 의사들로 새롭게 교수진을 꾸려야 한다”고 강도 높게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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