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팀이 난치암으로 꼽히는 췌장암의 비밀을 풀 열쇠를 찾았다.
삼성서울병원 이종균·박주경 소화기내과 교수와 이민우 영상의학과 교수, 김혜민 메타지놈센터 박사 연구팀은 울산과학기술원(UNIST) 이세민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형오 박사팀과 함께 췌장암의 단일세포 전사체 데이터를 분석해 췌장암의 분자적 특성을 규명했다고 7일 밝혔다.
췌장암은 특별한 증상이 없기 때문에 조기 발견이 쉽지 않다. 전이가 빠른데 치료 내성도 잘 생겨 10년 상대 생존율은 9.4%에 불과하다. 국내 10대암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연구팀은 췌장암 치료 이력이 없는 환자 21명을 상대로 내시경 초음파 유도하 세침조직검사를 시행해 췌장암 조직을 획득했다. 연구 대상자의 평균 나이는 61세로 췌장암 3기가 6명(29%), 4기가 15명(71%)이었다. 4기 환자 15명 중 13명은 간, 2명은 간이 아닌 뼈나 림프절로 전이된 상태였고 전체 생존기간(OS)은 9.7개월(중앙값)로 조사됐다.
연구팀은 21개의 원발성 췌장암 조직과 표본, 7개의 간 전이 표본을 활용해 단일 세포 전사체 데이터 분석을 시행했다. 췌장암의 진화와 다른 조직으로 전이하는 과정을 규명하고 효과적인 바이오마커를 개발해 효과적인 치료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다.
분석 결과 췌장암의 세부 유형 중 기본형(Classical)과 기저형(Basal-like) 모두 상피-중간엽전이(EMT)가 활성화되어 암세포가 다른 부위로 이동하는 전이를 일으켰다. 기본형에서는 ETV1, 기저형에서는 KRAS 유전자가 더 자주 관찰됐다. 이들은 모두 암세포의 빠른 성장과 전이를 촉진하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다.
연구팀은 췌장암의 여러 유형 중 악성도가 높은 기저형은 세포 비율이 22%만 돼도 치료 경과가 더 나빠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기저형이 암조직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췌장암 환자의 생존율 단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기본형 56%, 기저형 36%였던 췌장암 환자는 항암제를 투여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 5.3개월만에 사망했다. 반면 췌장암 조직이 기저형 없이 정상형과 기본형으로만 구성됐던 환자는 치료 반응이 좋아 45.6개월간 추적 관찰이 가능했고 연구 종료시점에도 생존해 있었다.
연구팀은 췌장암 진화 과정에서 종양세포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면역억제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도 규명했다. 췌장에서 가까운 간에 전이가 일어나면 면역 억제 특성을 가진 염증 세포 집단이 다른 부위보다 많아졌다. 전이 시 면역세포들이 억제돼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공격하게 하지 못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암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원리다. 이러한 환경도 췌장암을 구성하는 세포 중 기저형 비율 증가에 비례한다는 것도 함께 드러났다.
박 교수는 “췌장암을 분자 수준에서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치료 전략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난치암 치료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한 연구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박 교수팀은 2009년부터 전향적인 췌장암 코호트 구축을 시작해 2015년 ‘삼성서울병원 췌담도계질환코호트’를 출범시켰다. 췌장암의 조기진단, 모니터링, 예후 예측, 바이오마커 발굴 등 암 중개연구를 통해 환자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치료 전략을 개발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NRF)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으며 국제학술지 ‘분자암(Molecular Cancer)’ 최근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