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세율 10%P 낮추자"…상속세 개편론 본격화[뒷북경제]

최근 경총 주최 '밸류업 세제' 세미나에서
최고세율 구간 '30억→100억 상향' 주장도
유산취득세 전환·최대주주 할증폐지 등 거론



“상속세율 인하와 관련해선 급격한 인하보단 10%포인트 내려 사회적 공감대를 획득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지난 3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주최한 ‘기업 밸류업을 위한 세제 개선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이 같은 제언이 나왔습니다. 이번 토론회는 다음 달 말엽에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세제 개편안을 앞두고 기획재정부 세제실 국장급 인사까지 참석한 행사였던 만큼 학계와 언론의 관심이 꽤나 컸습니다.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상속세제 완화에 대한 의견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라, 이번 토론회에서 다뤄진 것처럼 상속세제 개편이 대대적으로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상속세 10%포인트 낮추고 최고세율 구간 하한은 30억→100억으로”




이번 토론회에서 제안된 안은 크게 △상속세율 인하 △상속세 과세표준 구간 개편으로 나눠서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최고세율을 현행 50%에서 40%로 낮춰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상속세 과표 최고 구간은 지금의 ‘30억 원 초과’에서 ‘100억 원 초과’로 상향하자는 제언도 덧붙였습니다. 10%의 세율이 붙는 첫 상속세 과표 구간은 현행 ‘1억 원 이하’에서 ‘15억 원 이하’로 올려 잡자는 의견도 내놓았습니다.


상속세율과 과세 구간은 2000년 개편된 후 24년간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한국의 경제 규모는 급격히 커졌습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76.7% 상승했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11.9% 증가했습니다. 코스피지수는 426.2% 올랐습니다. 게다가 기대 수명도 오르는 추세라 노부모가 고령자인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노노(老老) 상속’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러다 보니 실질적인 상속세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KPMG에 따르면 2023년 기준 1억 유로의 가치를 보유한 기업이 지분의 10%를 자녀에게 물려줄 경우 한국의 상속세 실효세율은 41%로 분석 대상 57개국 중 가장 높았습니다. 상속이 발생했을 때 상속세 납부 대상에 오른 상속세 과세자 비율은 2000년 0.7%에서 2010년 1.4%, 2020년 2.9%, 2022년 4.5% 수준으로 가파르게 치솟고 있습니다.


이번 토론회에서 이 안을 발표했던 박성욱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는 “현재 상속세 최고세율 적용 구간인 30억 원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53억 원”이라고도 했습니다. 박 교수는 “최대주주 할증 평가 제도는 폐지하거나 업종·규모별로 차등화해야 한다”며 “밸류업 대상 기업에 한해서라도 기업상속공제 범위·한도를 확장해야 한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전직 세제실장들도 “상속세 개편” 한목소리



기재부 세제실장을 지낸 5명도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상속세 개편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우선 “유산세 구조인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유산세 방식은 피상속인의 유산 전체를 하나의 과세 대상으로 간주하는 반면 유산취득세는 상속인 각자가 물려받은 재산을 기준으로 별도의 세금을 매깁니다. 상속세는 누진세율로 과세되기 때문에 과세표준을 낮출 수 있는 유산취득세가 납세자 입장에서 유리합니다.


세제실장과 관세청장을 역임한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현재의 유산세는 가족 제도가 오형제·육남매 등 대가족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을 때 전산이 잘 돼 있지 않아 국가에서 세금을 걷기 쉬운 방식을 택한 것”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가족 구조와 과세 환경이 크게 바뀌었고 금융실명제 등 재산을 평가하기가 쉬워져 (유산세는) 우리 경제에 안 맞는 옷이 됐다”고 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명목세율이 높은 일본이 한국보다 실제 세 부담이 작은 것도 유산취득세의 영향이 크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특히 일본은 여기에 강력한 배우자 공제까지 제공하면서 실제 상속세 부담을 크게 낮췄다는 분석이 제기됩니다.


일본의 배우자 공제액은 1억 6000만 엔(약 14억 원)과 법정상속분 중 큰 금액을 바탕으로 책정합니다. 법정상속분은 상속재산의 2분의 1로 매깁니다. 한국에서는 최대 30억 원까지 배우자 공제를 제공하기 때문에 자산가 입장에서는 일본에서 절세의 여지가 더 많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유산취득세로의 조정과 함께 세율도 낮춰야 한다는 분석도 많습니다. 세제실장과 관세청장을 지낸 김낙회 법무법인 율촌 고문은 “해외의 경우 상속세 과세자 비율이 2~3%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4~5%에 이른다”며 “그동안의 물가 상승률과 지금의 과세자 비율 등을 고려했을 때 부담을 완화하는 쪽으로 조정할 필요성이 분명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대주주 할증 과세를 없애야 한다는 말도 나옵니다. 익명을 요구한 A 전 세제실장은 “안 그래도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아닌데 상속세가 높으면 경영권 승계가 안 돼 경영 유인이 더 떨어진다”며 “경영진이 미래 사업 계획 등을 짜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상속세를 줄일 수 있을까, 해외로 자본을 유출할 방법은 없을까 등을 더 고민하게 만들어 현행 상속세는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또 “대주주 할증 과세부터 없애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전직 세제실장 B씨도 “상속세는 세금으로서의 기능보다는 합리성·효율성이 없는 지극히 징벌적인 이념세”라며 “가장 시급한 것이 상속·증여세 개편”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기회에 증여세를 포함해 전반적인 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C 전 실장은 “물가 상승률 등을 감안해 공제 한도 조정 등도 필요한데 이 경우 상속세뿐만 아니라 증여세 한도도 함께 개편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상속세 개편 군불 지피는 정부


정부는 상속세 개편론에 꾸준히 군불을 지피는 모습입니다. 당장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민생토론회에서 “대주주 입장에서는 주가가 너무 올라가면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어야 한다”며 "할증세까지 있어서 재벌 기업과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기업들도 주가가 올라가면 가업 승계가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기자간담회에서 “상속세는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 가업상속공제 대상·한도 확대, 밸류업 기업만 가업상속공제 폭 확대 등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며 “6월부터 공청회나 의견 수렴 절차 등을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 부총리가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를 거론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올해 발표될 세법 개정안에서 상속세와 관련한 대대적인 개편안이 발표될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변수는 ‘거야(巨野)’ 정국에서 국회를 어떻게 설득할지입니다. 세법 개정안은 일단 정부에서 7월 말엽 개정안을 발표하면 이후 국회 논의를 거쳐 확정됩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기본적으로 상속세 완화를 부자 감세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다만 민주당에서도 중산층 상속세 부담 완화에 대해선 동의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국세청 차장을 지낸 임광현 민주당 원내부대표는 지난 4일 “과표 구간 5억~10억 원인 중산층 가구의 세 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주는 상속세법 개정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일괄공제 금액을 1억~2억 원가량 높여 상속세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입니다. 한 세무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세법 개정안이 나온 뒤 세제를 두고 여야 간 논쟁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