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가계대출이 최근 두 달 동안 10조 원 가까이 급증했다. 올 4월 증가세로 돌아선 후 그 폭이 점점 더 커지는 추세다. 아파트 거래량이 늘어나는 등 주택 경기가 회복되면서 디딤돌·버팀목대출 등 저금리 정책금융 상품을 중심으로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증가한 영향이다. 이에 따라 정책금융 상품이 부동산 시장을 자극해 가계대출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2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5월 중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전월 대비 5조 4000억 원 늘어났다. 증가 폭이 4월 4조 1000억 원에 비해 커져 지난해 10월(6조 2000억 원) 이후 7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4월과 5월 두 달 동안 늘어난 가계대출만 9조 5000억 원으로 10조 원에 육박한 상태다.
올 4월부터 가계대출 증가세가 가팔라진 것은 금리 인하 기대감과 집값 저점 인식이 확대로 주택 거래량이 늘면서 주담대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매매는 1월 3만 2111가구, 2월 3만 3333가구, 3월 4만 233가구, 4월 4만 4119가구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주택 거래 회복세로 5월 주담대는 전월 대비 5조 6000억 원 늘어 전월(4조 1000억 원) 대비 증가 폭이 1조 5000억 원 확대됐다. 특히 은행권의 주담대 증가 폭이 4월 4조 5000억 원에서 5월 5조 7000억 원으로 크게 뛰었다.
특히 저금리 정책금융 상품인 디딤돌(주택 구입용)대출과 버팀목(전세자금용)대출이 크게 증가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 1월부터 5월까지 공급된 은행 재원 디딤돌·버팀목대출 규모는 14조 2000억 원이다. 같은 기간 늘어난 주담대 17조 5200억 원 중 81.1%에 달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주담대 증가분을 항목별로 뜯어보면 정책상품이 대부분”이라면서 “금융 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은행 자체 주담대 상품은 거의 늘리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은행 재원 디딤돌·버팀목대출이 늘어난 데는 정부가 지난해 10월 디딤돌과 버팀목대출의 부부 합산 연소득 요건을 각각 8500만 원과 7500만 원으로 1500만 원씩 늘린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디딤돌·버팀목대출 신청 소득 기준이 확대돼 대출 신청 문턱이 낮아진 데다, 최근 부동산 시장이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거래가 급등한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주택도시기금(정부 재원)을 통한 정책대출이 은행 재원(이차보전 방식)으로 이뤄지면서 통계적으로 수치가 증가한 영향도 있다.
올 하반기부터 최저 1%대 금리의 ‘신생아 특례대출’ 신청 소득 기준 역시 대폭 완화되면서 정책금융 상품 확대에 따른 주담대 증가세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신생아 특례대출 소득 기준은 올 3분기부터 부부 합산 1억 3000만 원에서 2억 원으로 완화된다.
문제는 정책금융 상품 위주로 주담대가 늘어나고 있어 당국으로서는 이를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디딤돌·버팀목대출 기준을 높이면 결국 무주택 실수요자의 주거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여신 담당 임원은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질수록 정책 모기지나 은행 대출이 전반적으로 늘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정책 모기지라도 있어야 차주의 부담을 그나마 덜어줄 수 있다”고 전했다.
주담대 증가세는 이달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1~7일 사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담대 잔액은 547조 1912억 원으로 지난달 말(546조 3060억 원) 대비 8852억 원 늘었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될 경우 전 은행권의 6월 주담대 규모는 최소 4조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까지 이뤄질 경우 가계부채 규모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대출 갈아타기’ 활성화로 은행권의 금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시장금리가 하락하고 있다는 점도 위험 요인 중 하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4월 주담대 금리는 3.93%로 2022년 5월(3.90%) 이후 1년 11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고정형(혼합형) 금리와 대환대출 주담대 금리는 더 낮다. 4월 고정형 주담대 평균 금리는 3.91%로 변동형(3.95%)보다 낮고 5대 은행의 대환대출용 금리의 범위는 3.67~3.83%다.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도입 등 ‘가계대출 조이기’에 나섰던 금융 당국에도 비상이 걸렸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은행연합회와 5대 시중은행을 소집해 가계대출 점검에 나섰다.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은 “하반기 통화정책 기조 전환에 대한 기대감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책모기지 요건 완화와 부동산 거래 회복, 부동산 세제 개편 논의 등이 맞물리면서 더욱 세심한 관리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정부의 정책적·제도적 노력과 함께 금융권 역시 차주의 상환 능력을 감안한 대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시중은행과 달리 2금융권의 가계대출이 올 들어 11조 원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로 상가와 사무실 임대 수익이 줄면서 비주택담보대출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2금융권의 가계대출은 올 들어 5월까지 11조 2000억 원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은행의 가계대출이 14조 7000억 원이나 늘어난 것과는 완전히 반대다.
업권별로 세분화해보면 농협·신협·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권 대출이 11조 3000억 원이나 줄어든 영향이 컸다. 여신전문금융사(1조 2000억 원), 저축은행(2000억 원)의 대출이 늘긴 했지만 상호금융권 대출 감소 폭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상호금융권을 중심으로 대출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비주택담보대출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비주택담보대출은 상업용 부동산 등을 담보로 받은 대출이다. 고금리 여파로 임대 수익보다 대출 이자가 높아지자 관련 대출이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새마을금고 등이 연체율 관리를 위해 대출 영업을 줄인 점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상호금융권의 비주택담보대출 수요가 예년에 비해 확연히 줄고 있다”면서 “투자로 벌어들이는 수익보다 이자 부담이 높아지자 조기 상환은 늘고 신규 대출은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