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간 유지되고 있는 한국석유공사의 법정 자본금 13조 원을 선제적으로 확충해놔야 올해 연말부터 본격화할 동해 심해 가스전 탐사·개발 작업시 발목잡힐 일이 없으리라는 주장이 나온다. 시추공을 하나 뚫는 데 1000억~1300억 원이 들어갈뿐만 아니라 실제 생산까지 이어지려면 천문학적인 추가 재원도 요구되기 때문이다.
16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1978년 석유공사법 제정 및 시행에 따라 500억 원의 법정 자본금으로 출발했다. 이후 석유공사는 4차례 법개정을 통해 법정 자본금을 확충했다. 1994년 3조 원으로 처음 조 단위를 넘어선 데 이어 1998년 5조 원, 2007년 10조 원, 2012년 13조 원까지 불어났다. 출자자는 정부로 제한돼 있다. 법정 자본금은 정부가 자율적으로 출자할 수 있는 한도다. 정부의 무분별한 출자를 막기 위한 일종의 안전 장치에 해당하지만 때에 따라 공기업의 성장을 제약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석유공사는 납입 자본금이 지난해 말 기준 10조 7877억 원으로 법정 자본금의 약 83%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다. 2019년 10조 5076억 원이었으니 연간 250억 원가량 늘어난 셈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된 자원외교 실패 여파로 2020년 말부터 완전 자본 잠식에 빠져 있는 탓에 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는 연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완전 자본 잠식은 적자가 누적돼 납입 자본금까지 모두 갉아먹는 상태를 의미한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판단하에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는 출자 규모가 크게 쪼그라들었다가 윤석열 정부에선 점차 회복되는 추세다.
문제는 석유공사가 동해 심해 가스전 탐사·개발에 적극 나서려면 부족한 투자금의 상당액을 정부로부터 끌어와야 한다는 점이다. 납입 자본금이 빠르게 차올라 법정 자본금 턱밑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그 영향이다. 최소 5개의 시추공을 전액 정부 출자 통해 조달한다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하면 6500억 원(1300억 원×5)이 필요하다. 이를 반영한 납입 자본금은 11조4377억 원(약 88%)으로 단숨에 5%포인트가 높아지게 된다.
시추가 성공해 본격 생산에 착수할 경우 정부와 석유공사가 대야하는 자금은 더 늘어나게 된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2027~2028년쯤이면 공사가 시작돼 상업적 개발은 2035년 정도에 시작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했다. 자원개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 첫 시추 전이라 섣부른 감이 없지 않지만 결국에는 법개정을 통한 법정 자본금 증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석유공사는 올해 12월 말 ‘대왕고래’를 포함한 7개의 동해 심해 가스전 유망구조 중 한 곳을 골라 첫 탐사 시추에 나설 예정이다. 우선 ‘착수비’ 격의 재원 약 120억 원이 확보됐으나 야당의 반발 속 내년 이후 자금 조달에 난항이 예상된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진상규명 없이는 시추 예산을 늘려줄 수 없다”며 “국회의원들의 자료 제출 요구도 거부하고 있는데, 이 자체가 의혹을 인정하는 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는 석유공사 등 자원 공기업에 대한 성공불융자 재개, 글로벌 메이저 석유기업 투자 유치 등의 재원 마련 대책을 검토 중이다. 김동섭 석유공사 사장은 “외국 기업이 들어오기에 매력적으로 하면서도 국익을 최대화하는 고차 방정식을 풀어나가야 한다”며 “지금부터 몇달간이 정말 중요한 시간”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