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환자 생명을 정부 압박 도구로 쓰는 것은 정당화할 수 없다

서울대병원 일부 교수들이 17일부터 무기한 집단 휴진에 들어갔다. 전체 1475명의 교수 중 36%인 529명이 참여해 수술장 가동률이 약 60%에서 30%로 떨어져 많은 환자들이 헛걸음했다. 의사들의 ‘진료 거부’는 법 위반 소지도 적지 않지만 막대한 세금 지원을 받는 국립대학법인의 교수들이 ‘진료 파업’에 앞장선 것은 비도덕적 행태이다. 400명이 넘는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지난 일주일간 환자들의 입원·외래·수술 일정을 미뤘다. 서울대병원을 시작으로 집단 휴진이 전국적으로 확산할 조짐도 보인다. 대한의사협회의 결의에 따라 18일에는 전국 병의원이 집단 휴진을 실시하고 다른 지역의 일부 대학병원 교수들도 동반 휴진에 나선다. 연세대 의대 교수들도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을 예고한 상태다.


의사들의 일방적이고 무책임한 휴진 통보에 환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심지어 서울대병원은 암 4기 환자에게 ‘진료 연기’를 통보했다가 논란이 되자 “요청하면 조정하겠다”고 번복해 환자들의 공분을 샀다. 병마와 피 마르는 사투를 벌이는 중환자들에게 치료는 아무 때나 해도 되는 한가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정부를 압박하는 도구가 환자의 불안과 피해라면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중증질환자연합회도 “의사들의 행동이 조직폭력배와 같다”며 “이들의 학문과 도덕과 상식은 무너졌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의사들은 응급·중증 환자에게는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강변하지만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경증 질환도 치료 시기를 놓치면 중증으로 악화한다는 점을 의사들 스스로 잘 알 것이다. 의사협회가 휴진 철회 조건으로 내세운 의대 정원 재논의, 전공의 행정명령 철회,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수정 등의 요구도 억지일 뿐이다. 이 같은 요구는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의대 정원 재논의 등은 환자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될 수 없다. 이제라도 의사들은 비인도적인 휴진 결정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환자를 대정부 투쟁의 도구로 삼는 것은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행태다. 환자와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의사들이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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