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내리면 물가자극, 놔두면 경기둔화…내달 금통위에 분수령

■ 기로에 선 통화정책
韓의식주 물가 OECD 평균 1.6배
공급 측면서 정부정책 개선 주문
일각선 "물가 아닌 경기 우선해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총재가 생활물가에 대한 구조개선 필요성을 지적한 것은 한은이 통화정책 전환에 대해 여전히 방향을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유럽연합, 캐나다 등 주요국이 피벗을 결정한 가운데 한은은 물가 불안과 경기 부진 등 어느 요인에 더 무게중심을 줄 지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상황이다.


이 총재가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 간담회를 개최한 18일 한은의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너무 빨리 금리를 내리는 쪽으로 내몰릴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한은이 우려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전직 한은 고위 관계자도 “필수 소비재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게 되면 수요가 증가해 물가 하락 압력이 둔화할 수 있다”며 “지금의 금리 상황이 서민들에게 고통스럽고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제적으로 나서기에는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한은 물가동향팀이 펴낸 ‘BOK 이슈노트 보고서’에서도 이러한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은에 따르면 국내 물가 수준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포함해 소득 수준이 비슷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품목별 양극화 현상이 심하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의류·신발 및 식품 비용은 OECD 평균의 각각 1.6배였고 주거비는 1.2배였다.


예를 들어 사과값은 OECD 평균의 3배에 육박했고 티셔츠와 남성 정장은 2배가 넘었다. 반면 전기·수도·가스와 같은 공공비용은 OECD 평균의 0.6배에 불과했다. 한은은 사과 같은 농산물 가격이 비싼 것은 수입 개방 제한에 따른 구조적 측면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한은은 생활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공급 채널 다양화와 유통구조 개선, 공공서비스 공급 지속 가능성 확보 등을 제안했다. 대신 공공요금 가격을 올리면 취약 계층의 소비 여력이 3%가량 낮아지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선별적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 총재가 이날 이례적으로 농산물 수입 확대와 유통망 개선을 주문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은의 업무 범위를 넘어서는 내용이지만 한은의 금리 정책만으로는 물가를 잡는 데 한계가 있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이 총재는 “물가 수준이 높으면 물가상승률이 낮아도 물가 수준이 높은 걸 해결할 수 없다. 국민 체감은 물가 수준 영향을 받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과소평가가 아니다. 이 문제는 한은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워서 여러 부처 간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수요 관리는 중앙은행의 금리 조절을 통해 대응하는 것이 타당하고 공급 충격 측면에서는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 많다”며 “특히 구조적인 가격 상승은 주로 공급 측면에서 기인하는데 이런 데에서는 정부가 유통망 관련 대책을 세우거나 스마트팜 육성 등 농업 부문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도 “단기적으로는 수입 물량 확충이나 할당관세 등을 통해 공급 충격에 대응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농축수산업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문제는 통화 정책 전환 타이밍이다. 각종 제도 개선이 단기간 내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제적인 금리 인하 시 물가가 더 뛸 수 있다. 하지만 물가가 지금처럼 예상대로만 내려온다면 하반기 중 금리 인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올 수 있다. 한은이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피벗을 바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절한 시점을 잡는 게 관건이다. 앞으로 남은 금융통화위원회는 7월·8월·10월·11월 네 차례다. 정책 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공식 사전 예고가 필수라는 점을 생각하면 7월 금통위가 중요할 수 있다. 이 총재가 “7월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기다려봐야 한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신중하게 금리 인하 시점을 잡되 미국의 금리 인하 시기와 환율 변동성을 주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수 부진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해결을 위해 한은이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섣불리 내리면 물가가 다시 튈 수 있다”며 “미국이 금리를 내릴 경우 변수가 줄기 때문에 한은이 바로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입 물가가 낮아야 국내의 전반적인 물가도 낮아진다”며 “환율이 낮아질 때까지 한은이 관망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대로 최근 수요 측 물가 상승 요인이 다소 줄어든 만큼 금리 인하를 고려할 만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금리 인상 시점이 너무 늦어지면 경기 둔화 속도가 빨라지고 자영업자와 서민들의 고통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최근 경제 주요 이슈는 사실 물가보다 경기”라며 “많은 나라들이 오히려 금리를 인하해야 할 상황인데 한은 총재도 물가가 아니라 경기를 언급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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