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변화를"…나눔이 만든 '희망 교실'

보육원 출신등 19명의 배움터 가평 음악대안학교 '노비따스'
다문화가정 등 女중·고생 음악수업
미르철강 등 기업·후원자가 도움
1명 위해 서울서 재능기부 오기도
콩쿠르 대상자 배출, 내년 첫 졸업생
"재정 빠듯, 학생 더 못받아 아쉬워"

17일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있는 노비따스음악중·고등학교의 합주실에서 최동훈 교사의 지휘로 학생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 손대선 기자

경기 가평군 설악면 위곡리의 고갯길에 자리한 학력 인정 기숙형 대안 학교 노비따스음악중·고등학교. 교정에 들어서자 다양한 악기 소리가 교실에서 울려 나왔다.


이곳은 한 아동 양육 시설(고아원) 10대 소녀의 ‘배워서 뭐 하냐’는 넋두리를 접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송천오(안드레아) 신부가 설립을 주도한 음악 대안 학교다. ‘음악을 통해 아이들에게 변화를 주자’는 제안에 2020년 봄 중1 신입생 12명을 받아들여 개교했다. 음악에 재능이 있는 아동 양육 시설 출신 여학생들이 주축이었지만 현재는 다문화가정·한부모가정 자녀 등을 포함해 총 19명의 중고교 여학생이 재학 중이다.


내년에 첫 졸업생을 배출하는 이 학교의 교육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경기도교육청의 소개로 최근 노비따스 수업을 참관했다. 음악 학교를 표방하다 보니 일반 학교 정규 과정에 더해 관악과 성악·작곡 등 음악 수업을 병행한다. 개인·그룹별 레슨도 추가된다.


전 학년이 참여하는 합주 수업을 진행한 최동훈 교사는 ‘아리랑’을 연주하는 학생들에게 호흡과 화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트롬본 연주자에게 “물고기가 유영하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듯 연주하라”고 설명하고, 클라리넷 연주자에게는 “너를 위한 솔로가 아니다. 모두를 위한 합주”라고 지적했다.



유명 클라리넷 연주자 임명진 강사가 17일 경기 가평군 설악면 노비따스음악중고등학교 연습실에서 학생을 지도하고 있다. 손대선 기자

‘물망초’ ‘제비꽃’ 합창을 지도한 김채원 교사는 소리의 고조감을 중시했다. “노래는 쌓아가는 것이다. 약하게 가다 커지고 많아지는, 이것을 빌드업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유명 클라리넷 연주자 임명진 강사는 단 한 명의 학생을 위해 서울에서 직접 차를 몰고 와 재능을 전수했다. 교사들의 언어는 부드러웠지만 억양은 단호했다. 마치 마지막 수업을 하듯 1초도 낭비하지 않았다. 점심시간 직후임에도 10대 학생들의 집중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일반 학교와 달리 졸거나 장난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약 9000㎡ 대지 위에 세워진 4층짜리 음악동과 교사동, 기숙사. 이들 시설에는 450석 규모의 음악당과 리허설룸, 개인 연습실 등이 있다. 번듯한 건물을 세운 것은 많은 독지가·기업·기관들의 기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르철강은 철근을 무상 제공했고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개인 연습실을 마련해줬다. 코스모스악기사는 연습용 악기를, 도교육청과 교육지원청 그리고 가평군은 프로그램 운영비를 지원한다. 무엇보다 수억 원대의 운영비 대부분이 대한적십자사 등을 통한 소액 기부자들 몫이다.


최 신부에 이어 2대 교장을 맡고 있는 김남성(요셉) 신부는 “요즘 세상에 돈이 없어서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비올라만 해도 차 한 대 값인데 여러 곳에서 다양한 후원이 지속되면서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가평군 설악면 위곡리의 고갯길에 자리한 노비따스 학교. 손대선 기자

이곳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교사와 학생들의 열정이다. 최근 다문화가정 출신 2학년 김미화 학생이 ‘74회 라이징 스타 콩쿠르’에서 비올라 연주로 대상을 받았다. 일반 중학교에 다니다 노비따스에 오기 위해 유급까지 한 이 학생은 입교 이래 가장 기쁜 순간을 자신의 수상이 아닌 지난해 교내에서 열린 정기 연주회라고 털어놓았다. 김 양은 “친구들과 가족 300여 명이 와서 정기 연주를 지켜봤다”며 “훌륭한 음악 교사나 연주자가 돼 후원해주신 분들을 위해 연주하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운영비의 100%를 후원에 의존하다 보니 살림살이가 늘 빠듯하다. 정규 과목 교사들과 레슨 강사들의 인건비는 일반 학교 수준보다 낮고 교재 등을 마련하는 데도 애를 먹는다. 34명 정원에 크게 못 미치는 19명만 재학하는 것은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교무행정부장을 겸하는 임지현 교사는 “재정 상황 때문에 더 많은 학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무척 아쉽다”고 전했다.


김 양을 비롯해 고은혜(고2)·조은채(고1)·박성희(고1) 등 이날 기자와 만난 학생들은 이전에 머물던 곳과 달리 이곳의 하루하루가 ‘새롭다’고 입을 모았다. 라틴어로 ‘새로움’이라는 뜻의 학교 이름 ‘노비따스(NOVITAS)’는 학생들이 직접 작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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