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공약’ 대상포진 백신 판도 흔들? 국산화의 딜레마

대상포진 백신 '조스타박스' 15년 만에 철수
NIP에 국산 백신 '스카이조스터' 도입 저울질
해외선 고가 사백신 '싱그릭스' 전환 잇따라
질병청 "수급 가능성·예산 등 종합 고려할것"

SK바이오사이언스의 대상포진 백신 ‘스카이조스터’. 사진 제공=SK바이오사이언스

백신 주권 확보를 위해 자급화를 거듭 강조해 온 정부가 국내 기술로 개발된 대상포진 백신의 국가예방접종사업(NIP) 적용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23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대상포진 예방접종 시장을 개척한 한국MSD의 '조스타박스'가 국내 진출 15년만에 철수를 선언하면서 시장 판도가 급변할 전망이다. 2006년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조스타박스는 세계 최초의 대상포진 백신이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10년 넘게 국내외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2017년 국내에서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가 개발한 '스카이조스터'가 발매되고 GSK의 '싱그릭스'가 FDA 승인을 받으며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싱그릭스는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약하게 만들어 독성을 제거한 조스타박스, 스카이조스터와 달리 살아있지 않은 항원에 면역증강제를 결합한 유전자 재조합 백신(사백신)이다. 2개월 간격으로 2회 접종해야 하기 때문에 접종 비용이 생백신보다 3배 가량 비싸다는 핸디캡에도 뛰어난 예방 효과에 시장 영향력을 빠르게 키웠다. 싱그릭스는 만 50세 이상 성인 대상 임상연구에서 97.2%의 예방효과를 확인했다. 경쟁사 제품 대비 30% 가량 높은 수준이다. 올 초 질병관리청이 공개한 연구에서도 생백신은 7년 후 대상포진 예방효과가 20~30%로 떨어지는 반면 사백신은 80% 이상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캐나다, 유럽, 영국, 일본, 호주 등 30여개 국에서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조스타박스의 국내 시장 철수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해외 대상포진 백신 시장은 대부분 사백신으로 전환됐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여러 국가에서는 시간 경과에 따라 예방 효과가 저하되고 면역저하자에게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생백신을 더 이상 권고하지 않는다. 비교적 사백신 도입이 늦었던 국내 시장도 비슷한 과정을 밟고 있다. 2017년 837억 원에 달했던 조스타박스의 국내 매출은 2023년 200억 원대로 떨어졌다. 한국MSD는 조스타박스를 대체할 수 있는 대상포진 백신이 도입돼 전 세계 수요가 크게 줄어 자발적으로 제조·공급 중단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사진 제공=국민의힘 20대 대통령선거 공약집

고령층에 대한 대상포진 백신 무료접종은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다. 비싼 가격이 국가예방접종사업(NIP) 도입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는데 조스타박스 시장 철수가 스카이조스터에 NIP 편입의 물꼬를 터주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NIP 백신으로 지정되면 제약사는 안정적이면서도 대규모의 백신 공급처를 확보할 수 있다. 국산 제품인 스카이조스터가 공급가를 대폭 낮춘다면 정부도 고가 백신을 무료로 접종할 기회를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싱그릭스의 등장으로 대상포진 백신 시장의 판도가 급변하는 상황인 만큼 양측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다고도 보여진다.


앞서 질병관리청은 2023년 7개 감염병 15개 백신에 대한 질병부담, 비용효과성 등의 평가를 통해 국가예방접종 도입의 우선순위를 평가했다. 대상포진은 70세 이상에 대한 생백신 도입(4위)이 생백신·사백신 병행 도입(13위)·재조합백신 도입(15위)보다 우선순위가 높았다. 비용효과성에 관한 명분까지 확보한 셈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최종 도입 결정은 우선순위 평가 결과와 함께 백신 수급 가능성, 예산확보 상황 등을 관계부처와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생백신만 무료접종을 추진할 경우 국산 제품 우대 논란과 더불어 효과가 떨어지는 값싼 백신만 NIP에 포함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조비룡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대상포진 발병과 합병증 위험을 낮추려면 60세 이상은 백신을 접종하는 게 좋다. 생백신만이라도 국가 지원이 이뤄지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다만 예방효과와 유지기간 등이 사백신과 차이가 있다는 점을 국민에게 충분히 알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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