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리밸런싱'이 위기감 자초…28~29일 B·O·A 윤곽 나온다

■28~29일 경영전략회의 관전 포인트
배터리, 내년부터 美 공장 가동
유동성 충분…위험 과대평가 분석
해외진출 성과 점검도 집중 논의
AI는 투자 늘리고 협업 확대 전망
재계 일각 "마치 워크아웃 연상
질서있는 경영 효율화 진행해야"



SK그룹의 미래를 결정할 경영전략회의 소집을 앞두고 SK 내부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SK는 28일 이천 SKMS연구소에서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도로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총집결한 가운데 1박 2일 경영전략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회의가 SK의 사업 리밸런싱(구조조정) 방향을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24일 “조용히 진행돼야 할 그룹의 사업 재편이 너무 요란하게 진행돼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문제”라며 “마치 워크아웃 상태의 상황을 연상시킬 정도”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부터 ‘방만 경영’ ‘사업 재편’ 등 여과되지 않은 발언들이 나오면서 시장은 물론 조직 내부가 불필요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재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분기당 수조 원 이상의 이익을 내고 매년 조 단위의 이익을 내는 계열사도 3~4개가 되는데 위기가 과장돼 있다”고 평가했다. 사업 재편, 경영 효율화 등을 차분하고 질서 있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재계나 시장은 SK가 경영전략회의를 통해 내놓을 방향에 관심을 쏟고 있다.


우선 사업 재편의 린치핀이라고 할 수 있는 배터리 사업의 향방이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방안 등도 결국 배터리 담당 기업인 SK온의 재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SK 내부에서도 SK온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재무 측면에서만 보면 1년 내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이 8조 6910억 원에 달해 보유 중인 현금성 자산(3조 4475억 원)에 비해 과도하게 높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내년부터 미국 공장 등이 순차적으로 가동되고 전기차 수요 역시 점진적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면 현재 리스크 요인은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목소리 또한 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체결한 3조 원 한도의 차입 약정 중 아직 1조 8000억 원가량이 남아 있고 장부상 유형자산 2조 3937억 원 중 담보로 잡힌 자산이 4356억 원에 불과한 것도 유동성 대응 능력을 높여주는 부분이다. 한마디로 당장 급전을 해결하지 않으면 회사가 휘청일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는 의미다.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4에 마련된 SK온 전시관 내부 모습. 연합뉴스

이 때문에 SK는 이번 회의에서 회사 합병이나 일부 에너지 자회사 매각 등 구체적 방안을 발표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SK의 한 관계자는 “배터리 사업의 현황과 미래, SK의 경쟁력 등을 전반적으로 오버뷰(개관)하고 이를 바탕으로 SK가 재무적·기술적으로 선도적 기업이 될 수 있는지를 강도 높게 점검하게 될 것”이라며 “토론을 통해 방향성이 도출되면 이를 바탕으로 액션 플랜의 실행 여부가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교체한 일부 CEO를 제외한 현재 CEO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인사 발령도 내지 않기로 했다.


SK가 공격적으로 진행했던 해외(oversea) 진출에 대한 성과 점검 또한 이번 회의의 안건으로 오른다. 사실 국내시장에서 규제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한 SK에 해외시장 공략은 숙원이었다. 2010년대 이후 일명 ‘차이나 인사이더’와 ‘베트남 구상’ 등이 최태원 SK 회장의 주도로 속도를 낸 사업들이다. 하지만 그동안 단행된 막대한 투자에 비해 성과는 아직 크지 않다는 게 재계의 진단이다.


SK하이닉스가 2021년 약 10조 원을 주고 중국 다롄에서 인수한 인텔 낸드사업부는 각종 규제와 가동률 하락 속에 회사 전체를 흔드는 위험 요인으로 작용했다. 베트남 빈·마산그룹에 대한 전략적 투자도 결국에는 이렇다 할 사업적 성과를 남기지 못하고 종료 수순을 밟고 있다.


반면 미래 사업으로 지목되는 인공지능(AI)에 대한 투자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평소 주변에 “이제 AI가 없던 시대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는다”며 “AI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SK의 미래를 가르게 될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회의를 앞두고 미국 출장길에 오른 것 역시 AI 산업 전반을 직접 점검해 각종 의사 결정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AI 사업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사업 협력 방안 등이 나올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최태원(오른쪽) SK 회장이 젠슨황 엔비디아 CEO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런 흐름을 고려할 때 SK하이닉스의 중장기 투자 방향과 자원 배분 방안 등에 대한 밀도 있는 논의 역시 의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사실상 단독 공급하면서 삼성을 제치고 AI 메모리 시장의 선두 주자로 뛰어오른 바 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삼성보다 상대적으로 투자 능력에서 밀리는 측면이 있는 만큼 실리콘밸리의 빅테크들과 전략적 투자 유치 방안에 대해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을(乙) 입장에서 고객을 관리하는 수준이 아니라 동맹을 맺을 수 있을 정도로 협업이 더 고도화돼야 한다는 의미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