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의 대기성 자금이 초단기채권으로 몰리고 있다. 연초부터 이어진 글로벌 증시 상승에 따른 차익 실현 매물에 더해 연내 금리 인하 전망이 힘을 받으면서 장기채권에서 단기채권으로 갈아타는 수요가 합쳐진 결과다. 수익률이 연 4%에 육박하는 초단기채권 상품이 시장을 일단 관망하면서 투자 기회를 엿보는 자금을 빨아들이는 양상이다.
24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달 21일 기준 국내 초단기채권펀드 설정액은 최근 1개월간 2조 3151억 원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일반채권펀드 설정액 증가분(1조 1402억 원)의 2배를 넘어서는 규모다. 대기성 자금의 대표 수요처인 머니마켓펀드(MMF)에서 최근 1개월 새 9조 원 이상이 빠져나간 것과 상반된 흐름이다. 같은 기간 주식형 펀드에서도 6904억 원이 줄었다.
초단기채권은 투자적격등급(BBB- 이상)에 투자하지만 국공채와 회사채에 대한 투자 제한이 없고 단기채권과 유동성에 대한 투자 비중이 커 현금성 자산에 주로 투자하는 일반 MMF에 비해 기대수익률이 높다. 실제 지난해 상장한 초단기채 상장지수펀드(ETF)인 ‘SOL 초단기채권액티브’는 상장한 지 1년이 채 안 됐지만 순자산이 5000억 원을 넘어 올해 들어서만 6배 이상 급증했다. 이 상품의 만기 기대수익률(YTM)은 연 3.83%로 무위험지표금리(KOFR)(3.59%), 양도성예금증서(CD)91일물(3.60%) 대비 높다.
차현우 KB자산운용 연금WM본부 이사는 “초단기채펀드는 MMF와 달리 시가 평가 방식을 사용해 금리 인하 시기에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현 상황에서 유동성 자금은 MMF보다 초단기채에 투자하는 게 더 좋은 수익률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파킹형 상품 중에서 만기가 3개월 미만인 초단기채권 상품에 자금이 몰리는 이유는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일단 차익을 실현하며 수익을 확정한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자의 상당수가 정중동(靜中動)의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올 3분기 이후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나오는 상황에서 통화정책 전환과 맞물려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는 만큼 관망 자금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두 번째는 다른 상품 대비 초단기채권형 상품의 수익률이 더 높다는 점이다. 최종적으로 투자 대상을 확정하기에 앞서 투자 실탄을 모아둘 상품이 필요한데 초단기채권 펀드가 매력적인 수익률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특히 초단기채권 펀드는 무위험지표금리(KOFR)나 양도성예금증서(CD)를 기초자산으로 한 합성형 상품과 달리 안전자산으로 분류돼 퇴직연금 계좌에서 100% 투자가 가능한 점도 자금을 유인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24일 에프앤가이드 집계에 따르면 초단기채권 펀드는 최근 1주일 새 7055억 원(21일 기준)이 유입됐고 1개월간 2조 3151억 원, 3개월간 5조 2999억 원이 각각 신규 설정됐다. 이는 대표적인 대기성 자금 수요처인 머니마켓펀드(MMF)의 자금 추이와 비교하면 확실히 대비된다. MMF는 최근 1주일 새 2조 4605억 원이 빠졌고, 1개월 9조 1619억 원, 3개월 3조 7975억 원이 각각 줄었다. MMF에서는 자금이 빠졌는데 초단기채권형 상품으로는 자금이 유입된 것이다.
시계를 넓혀 연초 대비 설정액을 비교하면 최근 몇 달 새 초단기채권 펀드로의 자금 쏠림이 두드러지고 있음이 확연해진다. 연초 이후 이달 21일까지 MMF로 36조 원의 자금이 쏟아졌고, 초단기채권 펀드로는 25% 수준에도 못 미치는 8조 원가량이 들어오는 데 그쳤다. 여전히 통화정책 방향의 불확실성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연초 대비 리스크는 줄어든 만큼 대기 자금의 방향성이 더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미국의 금리 인하 횟수에 대한 시장 전망이 연 1~2회로 좁혀지면서 주식 및 장기채권에서 차익을 실현한 한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좋은 초단기채권을 주목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연초 이후 지속된 글로벌 증시 상승에 따른 차익 실현 매물이 초단기채권으로 몰리는 데다 올해는 금리가 일단 충분히 내려왔다고 생각한 기관들도 장기채를 팔고 단기물로 넘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단기채권 금리는 KOFR, CD91일물 등 여러 단기 지표 수익률보다 높게 형성돼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단기채권펀드가 포함된 ‘신종형 MMF’의 만기 기대수익률(YTM)은 연 3.67%로 KOFR(3.59%), CD91일물(3.60%), 6개월 만기 정기예금(3.07%) 대비 높다. 개별 상품별로 보면 ‘SOL 초단기채권액티브’의 YTM은 3.83%로 ‘TIGER CD금리투자KIS(합성)(3.60%)’ ‘KODEX KOFR금리액티브(합성)(3.59%)’ ‘TIGER CD1년금리액티브(합성)(3.54%)’보다 높다.
여기에 KOFR, CD를 기초로 한 상품들과 달리 초단기채권 펀드는 안전자산으로 분류돼 퇴직연금 계좌에서 100% 투자 가능한 점도 개인투자자들을 유인하고 있다. 아울러 장부가 평가 방식인 MMF와 달리 초단기채권 펀드는 시가 평가 방식을 활용해 금리 인하 시 추가 자본 차익을 얻을 수 있는 점도 금리 인하를 앞둔 현 상황에서는 유리한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하반기에도 초단기채의 투자 매력이 이어질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황지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높아져 있는 금리 수혜를 가장 직접적으로 받을 수 있는 상품이 초단기채권”이라며 “아직 금리 인하에 대한 변동성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안전자산인 채권은 자본 수익보다는 이자 수익에 집중한 단기채권이나 우량 회사채를 편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경제가 상승 사이클의 후반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전망을 고려할 때, 4분기에 위험 자산의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며 “역사적 고점에 도달한 주식과 채권의 상관관계도 금리 인하 이후로는 점진적으로 낮아질 것이라는 점도 채권의 투자 매력도를 상승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증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MMF가 현금성 자산에 주로 투자하며 잔존 만기 120일 미만으로 운용돼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낮은 데 비해 초단기채권 상품은 금리 인하기에 MMF 대비 추가 자본 차익도 가능해 매력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