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제기된 북핵에 대응해 남한에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난해 4월 한미 ‘워싱턴 선언’으로 일단락이 됐다. 전술핵을 한반도에 두지 않되 한미가 ‘핵협의그룹(NCG)’을 구성해 기존 핵우산을 강화하자는 합의였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탄두를 보유한 러시아와 매일 핵 능력을 고도화시키는 북한이 사실상의 군사동맹을 맺으면서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우선 남한의 핵무장은 크게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식 핵 공유 △자체 핵무장 △재처리 등 평시 핵 기능 향상 등 세 가지로 분류된다. 이 중 자체 핵무장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을 수 있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전술핵은 1950년대부터 남한에 배치되기 시작해 1977년까지 최대 686기가 배치됐으며 이후 서서히 줄어 냉전 종식 직후인 1991년 말에는 완전히 철수됐다.
미국은 현재 벨기에·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튀르키예 등 5개 나토 회원국에 전술핵무기를 두고 있다. 핵 보유 및 통제권은 미국 대통령이, 전투기를 통한 핵 운반은 각국이 하는데 ‘나토식 핵 공유’로 불린다.
핵무장론이 나오는 가장 큰 배경은 북한과 러시아·중국에 대항해 ‘공포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달 19일 북러정상회담에서 “북한과 군사기술 협력의 진전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고도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핵을 보유한 북한과 중국·러시아와 맞댄 한국만 핵이 없으므로 우리도 핵을 저장고에 두고 있어야 북러의 위협에 대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냉전 시대 핵무기 4만 기를 가진 소련에 대해 미국은 핵무기 3만 기를 확보하는 ‘상호확증파괴(MAD)’ 전략을 구사했다. 힘의 균형으로 결국 냉전은 핵전쟁 없이 끝났다. 30여 년 만에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제는 ‘한국판 MAD 전략’을 구사해 힘에 의한 평화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남한에 핵무기가 있어야 북한의 위협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는 점도 핵무장론의 배경이다. 북한은 최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계속 발사하며 남한을 겨냥한 전술핵 발사도 시험하고 있다. 북한이 우리를 타격하는 데는 통상 10분 내외가 걸리지만 전술핵이 남한에 없는 상태에서는 북한에 핵 보복을 하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북러의 위협에 비하면 NCG의 효용성이 약하다는 것도 핵무장에 힘을 보태는 요소다. 한미 양국은 워싱턴 선언을 통해 NCG를 발족하고 미국의 핵 전력 정보를 공유하는 등의 합의를 했다. 하지만 차관보급 회의 채널로 힘이 실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미국의 정권 교체에 따라 안보 공약이 바뀔 수 있으므로 미리 핵무장을 갖춰야 안보를 지킬 수 있다는 주장 또한 나온다. 올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수차례 “우리가 왜 부유한 한국 같은 나라를 지켜줘야 하는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 초 최종현학술원 설문 조사에 따르면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 핵 억지력을 행사할 것이라 보는가’라는 질문에 부정적 응답이 60.8%에 달했고 ‘한국의 독자적 핵 개발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72.8%로 집계됐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국가안보실 산하에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미 대선 결과에 따른 모든 옵션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일본 수준의 핵 잠재력은 확보하겠다고 주장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주한미군 감축 이야기가 나올 것이므로 반대급부로 우리의 자체 핵무장을 용인해달라고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전술핵 재배치, 나토식 핵 공유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본 자위대의 재무장화, 핵 보유 가속화 등 동북아시아에서 도미노 핵 보유 현상이 확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강력 반발도 명약관화하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중국과 러시아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경제 보복을 할 것”이라며 “2017년 사드 보복과 같은 큰 파장이 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한국의 핵무장론이 비등하자 러시아는 다소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은 “북러 조약이 한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한국이 차분히 받아들이기를 기대한다”며 “이미 어려운 동북아 상황을 악화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