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전기요금 동결이 결정된 21일 한국전력은 연료비조정단가를 지금과 같은 ㎾h당 5원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전기요금은 기본요금·전력량요금·기후환경요금·연료비조정요금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최근의 단기 에너지 가격 흐름을 반영하기 위한 연료비조정요금의 계산 기준이 되는 것이 연료비조정단가다.
발표는 한전이 했다. 전기요금의 경우 사실상 정부 입맛대로 결정되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자료까지 내지는 않는다.
서부발전의 공시 내용은 한국의 전기요금 결정이 완전히 정부 의사에 따라 이뤄지는 것처럼 비칠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투자자들에게 소송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실제로 2018년에 한전이 2080억 원의 적자를 내자 한전 소액주주들은 2019년 당시 김종갑 한전 사장을 포함한 회사 이사진을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이들은 한전의 손실이 급증하는데 여름철 전기요금 인하 등을 가결하면서 경영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논리를 들었다. 서부발전이 시장 원리보다 정책적인 판단에 따라 전기료가 결정된다고 한 것은 한전과 계열사들이 정부 의중을 따를 것이며 누적된 적자를 방치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어 소액주주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서부발전의 경우 ‘전기요금 인상이 물가안정책과 반해 경영상 부담’이라고 적시하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발전 공기업들이 채권 투자설명서에 ‘전력요금이 정책적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고 언급하는 것이 이례적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도 있다. 가장 최근인 5월 남부발전은 ‘전력요금은 시장의 원리보다 정책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되므로 가격 결정 기능이 상대적으로 경직돼 있다’고 밝혔다. 남부발전은 2019년 7월과 2022년 4월, 올해 5월, 남동발전은 2021년 11월, 이달 24일 투자설명서에 정부의 가격 개입 리스크를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표현들에 주주 소송 등의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발전 업계 관계자는 “배임 소지로 소송을 걸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현행 전기요금 결정 제도가 완전히 시장 논리를 따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부가 100% 결정한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짚고 있다. 연료비가 오르면 이를 곧바로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선진국형 모델과 정해진 값으로 요금을 확정하는 신흥국형 모형 사이에 걸쳐 있다는 말이다. 한국도 2021년 원자재 가격을 전력 판매가에 반영하는 연료비연동제를 도입했지만 아직까지 전기요금 결정에 정부의 물가 정책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직 정부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정부가 정한다고 해도 이를 외부에 공식적으로 알리는 것은 다른 얘기”라며 “이런 공시에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전기위원회의 독립성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위원회 독립성 강화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독립성 강화 전까지는 전기요금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