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도 연구도 없었다…리튬배터리 관리사각지대가 참극 불러

화성 배터리공장 참사 '예고된 人災'
고온·수증기 만나면 폭발하는데
일반화학물질 분류 안전기준 無
금속화재는 화재유형 분류 없고
전용소화기 있어도 차선책 불과
적재기준 없어 3.5만개 한 곳에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토안전연구원,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관리공단 등 관계자들이 25일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장 화재 현장에서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한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 화성시 리튬 1차전지 제조 업체인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금속화재 대응은 처음부터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금속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전용 소화기 비치도 이뤄지지 않았고 3만 5000개의 배터리가 한 곳에 적재돼 있기도 했다. 1차전지는 리튬이온 배터리인 2차전지보다 화재 발생 가능성이 적다고 알려져 안전관리와 점검도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5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리튬 배터리 화재 관리에 대한 명확한 매뉴얼과 소관 부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이번 화성 참사는 일반적인 배터리 화재로 알려진 리튬이온 2차전지 화재와는 다른 특성을 보인다. 화성 1차전지 배터리 화재처럼 리튬에서 발생한 불은 금속화재(D급)로 분류된다. 이런 D급 화재는 현재 소방법상 화재 유형으로 분류되지 않은 상태다.


D급 화재 진압을 위한 소화기 비치나 매뉴얼 개발도 미흡하다. 국내에는 D급 화재 전용 소화기가 개발돼 있지 않다. 해외에서 개발된 D급 화재 소화기를 수입할 수는 있지만 이것 역시 화재 초기의 작은 규모 불꽃만 진압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게다가 사고 당시 현장에서 사용된 소화기는 일반적인 화재 현장에서 사용하는 분말 소화기였다. 이 소화기는 일반화재(A급), 유류화재(B급), 전기화재(C급), 주방화재(K급) 등을 진압할 수 있지만 D급 화재를 진압할 수는 없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D급 화재 전용 소화기가 있긴 하지만 그리 효과적이지 못해 작은 화재만 진압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D급 소화기를 현장에 갖다놓더라도 차선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1차전지가 2차전지보다 화재 가능성이 적고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져 안전관리가 소홀하게 이뤄진 것도 화재를 키운 원인이다. 통상 인화성 또는 발화성 성질을 가지는 위험물은 화재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봐 ‘위험물 안전 관리법’에 따라 지정 수량을 정해놓는다. 지정 수량 이상의 위험물을 한 데 모아 저장하지 않도록 법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리튬 금속 자체는 반응성이 큰 금속이어서 높은 온도에 노출되거나 수증기와 접촉하면 폭발해 위험물로 분류돼 있다. 그러나 리튬 배터리는 위험물로 분류되지 않아 지정 수량이 정해져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화성 공장 2층에만 리튬 배터리 3만 5000개가 보관되고 있었고 한 개의 배터리에서 발생한 불이 다른 배터리로 옮겨붙으면서 피해가 커졌다.


리튬 배터리 발화처럼 일반적인 화재와 달리 물로 진화할 수 없는 금속화재 대응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점도 문제로 꼽힌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시스템 통계에 따르면 ‘금수성 물질(물과 접촉했을 때 발화하거나 가연성가스를 발생시킬 위험이 있는 물질)의 물과 접촉’으로 인한 화재는 지난 5년(2019년~2024년 6월) 사이 144건 발생했다. 특히 지난해(28건)의 경우 화재 건수가 2013년(12건)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모든 금속화재는 전용 소화기나 마른 모래·팽창질석 등의 소화용구로만 진압할 수 있다”면서도 “흔한 사례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방 당국조차 평소에 마른 모래 등을 충분히 보관하지 않다보니 화재 발생 시 사설 제조업체의 모래를 조달해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방청에서도, 공장 현장에서도 자체적으로 금수성 물질에 대한 진화 장비를 충분히 구비를 해두고 관련 안전교육도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