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학가에서 학생 신분으로 위장한 중국인 ‘산업스파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청년 두뇌 유출까지 가속화하는 가운데 비어가는 대학 강의실을 차지한 산업스파이들이 국가 첨단기술 경쟁력을 좀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6일 재계와 학계에 따르면 중국 산업스파이들이 유학생과 연구자로 위장해 국내 대학의 연구실, 연구기관 등에서 암약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대학의 연구실을 매개로 대기업 등의 첨단기술 연구소까지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한 대학의 반도체학과 교수는 “산업스파이들의 종착지는 기업과 기업 연구소 취직”이라며 “이 과정에서 국내 대학은 중요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스파이들은 특히 갓 임용된 교수나 퇴직 직전의 교수들을 중심으로 기술을 빼내거나 인맥을 쌓아 추후 취직을 도모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대학들 역시 이 같은 현실을 알면서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중국인 유학생을 받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불가능한 대학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산업스파이 문제를 공론화했다가 중국인 학생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내 대학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 수는 2022년 기준 16만 6892명으로 2013년(8만 5923명) 대비 2배 가까이 늘었으며 이 중 중국인 비중은 통상 4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강대 등 일부 대학은 중국인 전용 강의까지 개설할 정도다.
의대가 아니면 입시에 실패한 것으로 보는 의대 쏠림 현상도 산업스파이 문제를 부채질하고 있다. 조중휘 인천대 임베디드시스템공학과 명예교수는 “연구교수나 학생들이 연구를 하려면 연구비도 필요하고 논문도 써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학생이 필요한데 의대 쏠림 현상에 특히 지방대 등은 더욱 사람 구하기가 어려우니 중국 학생이 필요하고 심지어 이들은 영어 논문을 잘 쓰는 경우가 많아 수용이 불가피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학내 보안은 개개인이 경각심을 가지는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기술 탈취에 대한 제도나 가이드라인이 따로 교내에 작동하는 것은 아니어서 반도체 등 국가 안보와 관련돼 있는 분야의 교수나 연구원들이 개인적으로 경계심을 가지는 정도가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조 명예교수도 “기업이야 각종 시스템 보안이 까다롭게 구축돼 있지만 대학에서는 프린트나 하드디스크 삽입도 편하게 할 수 있어 보안 강도가 매우 약하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한국을 향한 중국의 기술 탈취 시도가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중 갈등이 심화함에 따라 중국이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 비영리 기구인 국제교육원(IIE)에 따르면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 수는 2022~2023학년 28만 9526명으로 집계돼 37만 2532명을 기록했던 2019~2020학년 대비 22% 급감했다. 미국 유학길이 막힌 상황에서 미국이 잘하는 반도체 분야를 비롯해 디스플레이·2차전지 등 중국이 추격 중인 분야에서 첨단기술을 보유한 국내 대학과 산업 생태계는 더욱 매력적인 곳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미국에서는 중국 스파이들의 행적을 추적해 이들의 금융거래, 여행 이력까지 조사해주는 기업도 등장했다”며 “밖으로 나가는 인재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으로 들어오는 인재를 솎아내는 것은 더 중요해졌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