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28일 한국방송공사(KBS), 방송문화진흥회(MBC), 한국교육방송(EBS) 등 공영방송 3사의 이사 선임 절차에 돌입하며 속도전 양상을 보인 것은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거대 야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제출됐기 때문이다.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김 위원장의 직무가 정지돼 방통위 업무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기 전까지 상당 기간 마비된다. 지난해 12월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에 대한 야당의 탄핵소추와 이에 대응한 이 전 위원장의 사퇴 카드가 7개월 만에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방통위를 둘러싼 여야 간 힘겨루기는 MBC 경영권과 직결돼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열린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대한 시급성과 법적 정당성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공영방송 이사 선출 관련 개정 법률안이 국회에서 발의돼 논의 중이지만 현행법에 따라 이사 선임 추천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법 집행기관인 방통위의 책무”라고 말했다. 이상인 방통위 부위원장 역시 문재인 정부 시절 방통위 회의 속기록을 언급하며 공영방송 이사 선임 절차 진행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방통위의 이날 의결에 따라 MBC를 지배하는 방송문화진흥회의 새 이사진 선임이 진행되게 됐다. 8월 12일 임기가 끝나는 방문진 이사진들이 바뀌면 MBC 사장 교체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방문진 이사회는 9명으로 구성되는데 정부와 여당 추천이 6명, 야당 추천이 3명이다.
야권은 방통위가 김 위원장과 이 부위원장 ‘2인 체제’로 운영된 것을 위법이라고 주장하며 김 위원장 탄핵소추안을 이르면 다음 주 처리하는 것을 논의 중이다. 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제출한 김 위원장에 대한 고발장에도 혐의를 직권남용과 직무 유기 등으로 적시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김 위원장의 불법적 방송 장악 쿠데타가 윤석열 정권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더 키우고 있다”며 “불행한 사태를 피하려면 이러한 시도를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방탄’을 위해 방송을 겁박한다고 보고 있다. 국민의힘 과방위 간사인 최형두 의원은 이날 방통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의 민주당이 방통위를 방문해 물리력으로 겁박하려는 긴박한 상황”이라며 “불법적이고 겁박까지 하는 비겁하고 노골적인 행태를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김 위원장이 방문진과 KBS의 이사 선임 절차를 마친 뒤 국회에서 본인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기 전에 이 전 위원장처럼 자진 사퇴할 것으로 예상한다. 민주당은 이에 맞서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방송 3법과 방통위설치운영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에 힘을 쏟을 것으로 전망돼 여야 간 방통위를 둘러싼 대치 상황은 한층 격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한편 민주당은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 재추진 절차도 본격화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여당이 퇴장한 가운데 소위원회를 단독으로 구성하고 노란봉투법을 법안심사소위에 회부했다. 특히 국민의힘이 확보하려던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장을 민주당이 차지하며 노란봉투법 단독 처리 의지를 분명히 했다. 법안은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노조 활동을 보장하고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대폭 제한하고 있어 21대 국회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이 다시 행사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