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자녀를 위한 편안한 노후설계…유언대용신탁으로 준비해볼까?[도와줘요 자산관리]

■김성희 NH농협은행 All100자문센터 WM전문위원


일찍 혼자가 되신 A(75세) 할머니는 최근 암에 걸린 지인의 문병을 다녀오며 고민이 생겼다. 아버지의 상속재산에 대한 자녀간의 분쟁 발생으로 서로 골이 깊어지며 지켜보던 고령의 부모는 몸과 마음에 병이 생겼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평소 치매에 걸릴까 걱정이 많은 A할머니도 두 명의 자녀가 있어 사후 상속재산 분배에 대해 염려가 된다. 여러 번의 사업실패로 생활이 힘든 첫째에게 조금 더 주고 싶지만 또 사업자금으로 한 번에 탕진할까 고민이다. 욕심이 많은 둘째가 할머니의 상속 계획에 반발할까봐 걱정도 된다. 평생 힘들게 일궈온 재산 10억 원을 자신의 생활비와 간병비 등 노후자금으로 쓰면서, 분쟁 없는 상속 계획까지 미리 세우고 싶어 평소 거래하던 금융기관에 상담을 의뢰했다.


2022년 우리나라 사망자수는 약 35만 명으로 2050년까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 3조 4000억 원이던 상속재산은 부동산 가격상승과 고령화 추세가 빨라지면서 2022년 56조 4000억 원으로 급증했다. 자녀들 간 재산 분할 분쟁도 늘어나고 있다.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가족 서로 협의하지 못해 가정법원에 심판을 구하는 ‘상속재산분할 심판청구’건수는 2022년 기준 2776건에 달했고, 다른 상속인에게 법적 상속 권리를 요구하는 ‘유류분반환청구소송’ 접수 건수도 약 1872건에 이르렀다고 한다.


갑작스런 사망에서도 많은 재산을 아무런 분쟁 없이 가족들에게 이전하고, 본인이 희망하는 기부단체에 기부도 한 상속 사례가 있다. 지난 2009년 공연 준비 중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팝의 황제 마이클잭슨은 미리 대비한 ’신탁‘을 통해 생전에 일궈 높은 부와 명성을 성공적으로 이전했다. 마이클잭슨은 본인이 사망할 경우 상속인 지정부터 이들에 대한 상속재산의 배분비율, 지급시기까지 신탁계약으로 사전에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그가 가입한 신탁을 미국에서는 ’패밀리트러스트(Family Trust)‘라고 부르며 우리나라에서는 ’유언대용신탁‘이라고 한다. 최근 본인 사망 후 재산을 둘러싼 가족 간 분쟁을 예방할 방법으로 유언대용신탁이 관심을 끄는 이유다.


유언대용신탁이란 2012년 7월 26일 시행된 신탁법59조에 따라 유언장이 없더라도 신탁계약의 형태로 재산상속이 가능하도록 한 상품이다. 고객(위탁자)이 은행, 증권, 보험사 등(수탁자)에 금전·부동산·유가증권 등으로 신탁계약하고 위탁자 본인 재산의 소유권을 수탁자에게 이전한다. 위탁자가 살아 있을 때는 본인이 신탁계약의 수익자로서 발생하는 이익을 향유하다가 위탁자가 사망할 경우 신탁계약에 근거해 위탁자가 지정한 사후 수익자에게 신탁재산을 안정적으로 승계할 수 있다. 이 때 다른 법적상속인들의 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 신속한 지급이 가능하다.


유언대용신탁의 이점으로는 유연한 상속설계, 일정한 재산관리, 편리한 유언집행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상속계획을 생각할 때 유언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유언을 기재한 유언서의 경우 민법상 엄격한 방식과 요건이 요구되며 만약 조금이라도 부합하지 않으면 무효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유언대용신탁은 복잡한 유언서 작성 절차 없이 신탁계약을 통해 위탁자가 원하는 대로 설계하여 유언과 유사한 효과를 가질 수 있다. 또한 유언서는 만약 A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실 경우 특정 자녀가 본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변경하거나(유언서는 가장 최근 것만 유효) 분실, 훼손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유언대용신탁은 A할머니의 의사대로 상속될 수 있어 안전하다.


그리고 유언서는 사망 후 일시에 전액 지급하여 재산 관리 기능이 없는 반면 유언대용신탁의 신탁재산은 위탁자의 다양한 요구 지시 등에 따라 자산관리에 전문화된 은행 등 수탁자가 관리, 운용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특히 생전 고객(위탁자) 본인의 의료비, 생활비 출금도 가능하며 사후에도 위탁자가 지정한 조건으로 사후수익자(생전에 고객이 정한 자)에게 지급할 수 있어 일정한 재산관리까지 이루어져 유용하다. 예를 들어 재산관리가 걱정되는 첫째의 경우 2억 원을 월 500만 원씩 3년 4개월 동안 분할 지급받도록 하는 등 다양하게 설계할 수 있다. 유언집행도 유언서는 모든 상속인의 동의가 필요하여 분쟁 발생 시 긴 소송을 거쳐야만 지급받을 수 있지만, 유언대용신탁은 사후수익자 신분 확인만으로 집행이 가능해 편리하다.


그럼 두 자녀에 배분할 상속재산의 비율은 어떻게 정해야 할까?


자녀간의 분쟁이 전혀 없길 바란다면 유류분을 고려해 나누어야 한다. 유류분이란 법률로 정해진 상속재산으로 사후에 본인의 재산을 더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줄 자유는 있지만, 민법에서는 ’피상속인(사망하신 분)의 의사와 관계없이, 피상속인의 상속 재산 중 일정한 법적상속인을 위해 반드시 남겨두어야 하는 부분‘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유언서의 경우 유류분권자의 유류분 청구가 있으면 반드시 유류분 만큼을 돌려주어야 한다. 반면 유언대용신탁은 1심 판결의 입장이 엇갈린 상황으로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성남지원)과 △돌려줘야 한다는 판결(마산지원)이 대치하고 있다. 아직 대법원 판결이 없어 유언대용신탁은 유류분을 반환해야 하는지 명확히 규정할 수 없으며, 이 부분은 더 지켜보아야 한다.


그래서 전 재산 10억 원을 두 자녀에게 물려준다면 유류분을 고려해 조금 더 주고 싶은 첫째에게 최대 7.5억 원(3/4)을 둘째에게 최소 2.5억 원(1/4=법적상속분(1/2)의 1/2)을 나누어 주는 방식을 추천 드린다. 그러면 A할머니 사후에 첫째가 둘째의 동의 없이도 유언대용신탁 계약에서 정한 금액을 바로 찾아갈 수 있다.


유언대용신탁은 일반적으로 신탁을 설정·관리·운용·집행하는 보수가 발생한다. 신탁 보수 등에 부가가치세가 발행하는 경우도 있고, 신탁재산이 부동산 등 등기·등록해야 하는 재산이라면 등기등록 비용도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 신탁 가능한 재산은 금전, 증권, 금전채권, 동산, 부동산, 지상권·전세권 등 부동산에 관한 권리와 무체재산권(지식재산권)으로 크게 일곱 종류로 제한된다.


유언대용신탁이 상속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의 노후자금 관리와 자녀간의 상속갈등을 예방을 위해 사전적으로 준비하고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철저한 계획을 통해 더욱 편안한 노후생활을 가져가길 바란다.



김성희 NH농협은행 All100자문센터 WM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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