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꽂힌 최태원…하이닉스, 103조 쏟아 HBM 독주 굳힌다

■SK 경영전략회의…AI·반도체 집중투자
崔 "AI 밸류체인 리더십 강화"
HBM에 반도체투자 80% 집중
신규 팹 늘려 생산능력 키우고
美선 대학과 첨단패키징 협업
AI데이터 센터에도 3.4조 투자

SK그룹이 28~29일 경기 이천시 SKMS연구소에서 ‘경영전략회의’를 열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화상을 통해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사진 제공=SK

SK그룹이 사업 리밸런싱(구조조정)을 통해 2026년까지 80조 원을 확보하겠다고 선언한 배경에는 최태원 SK 회장이 직접 미래 성장 산업으로 점찍은 인공지능(AI)과 반도체가 있다. AI 관련 사업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년 수십조 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투자 자금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방만한 경영으로는 한정적인 SK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기 어렵다는 게 최 회장의 판단이다.


실제 최 회장은 경기 이천 SKMS연구소에서 1박 2일 일정으로 열린 경영전략회의에서 AI가 불러일으킨 변화에 선제 대응해달라고 거듭 주문했다. 그는 “지금 미국에서는 AI 말고는 할 이야기가 없다고 할 정도로 AI 관련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며 “그룹 보유 역량을 활용해 AI 서비스부터 인프라까지 AI 밸류체인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 본인 역시 그룹 최전선에서 AI의 중요성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올 4월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등 업계 ‘빅샷’들을 직접 만난 데 이어 이번 회의 기간에도 미국에 머물면서 샘 올트먼 오픈AI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 등 주요 빅테크 대표들과 직접 소통했다. 그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AI라는 거대한 흐름의 심장박동이 뛰는 이곳에 전례 없는 기회들이 눈에 보인다”며 “지금 뛰어들거나 영원히 도태되거나”라고 쓰기도 했다. 최 회장은 1주일가량 미국에 더 머물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AI 산업 선봉에는 SK하이닉스가 선다. SK하이닉스는 2028년까지 5년간 총 103조 원을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에 쏟아부을 예정이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관련 분야에 재원의 약 80%인 82조 원을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HBM은 고성능 AI 모델을 개발하고 서비스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메모리로 ‘영원한 2등’이었던 SK하이닉스가 AI 메모리 선두로 올라서는 데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SK하이닉스가 HBM 등에서 확연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모든 기술의 역사가 그렇듯 또 다른 파괴적 혁신에 의해 양상은 얼마든 달라질 수 있다”며 “아직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이 없는 에지 AI 디바이스 시장에서 필요한 메모리 구조도 선도해야 하는 등 AI 시장 초기인 만큼 경쟁 구도는 언제든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투자 결정으로 SK하이닉스가 추진해온 캐파(생산능력) 확대에도 한층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는 HBM, 선단 D램 등 기술력에서 경쟁사를 위협하고 있지만 삼성전자 등 경쟁사에 못 미치는 생산능력은 오랫동안 약점으로 지적돼왔다. 기술력이 앞서도 생산능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시장 점유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이러한 취약점을 보완하고자 올해 4월 충북 청주시의 신규 팹 M15X를 D램 생산기지로 결정하고 팹 건설에 약 5조 3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이 팹은 낸드플래시 생산기지로 건설될 예정이었지만 HBM, 서버용 고성능 D램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자 이에 대응해 건설 계획을 빠르게 전환했다.


미국 시장 확대 또한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에 AI용 첨단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다. 복잡한 AI용 연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만큼 패키징과 같은 첨단 후공정에 대한 기술 연구의 필요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생산기지를 통해 2028년 HBM 제품을 양산하는 것은 물론 현지 미국 대학과 협업해 미국 기업들과의 연결 고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반도체뿐 아니라 데이터센터·서비스 등 AI 사업을 영위하는 계열사들도 일제히 투자를 강화해 그룹 차원의 AI 밸류체인을 강화한다.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는 AI 관련 서비스 확장 및 고도화에 요구되는 컴퓨팅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AI 데이터센터 사업에 5년간 3조 4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SK텔레콤은 데이터센터 외에 세계적 챗봇 서비스 클로드에 1억 달러를 투자하기도 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SK수펙스추구협의회 내부에 반도체위원회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반도체 사업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그룹 내부에서 SK하이닉스와 경영진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