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프랑스 총리를 결정하는 조기 총선 1차 투표가 30일(이하 현지 시간) 치러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패색이 짙어지는 가운데 27년 만에 극우 정당과의 동거 정부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조기 총선 승부수를 던진 마크롱 대통령의 선택이 외려 마린 르펜에게 차기 대권을 내어줄 자충수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프랑스 본토와 해외령 전역의 577개 선거구에서 이날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파리 등은 오후 8시) 조기 총선 투표가 진행됐다. 전체 577석인 하원 의석을 놓고 정당별로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지지율은 3주간의 선거운동 기간 내내 부동의 1위를 기록하면서 지지세를 확고히 했다. 선거운동 기간 중 RN의 지지율은 높아지는 반면 집권 르네상스의 지지율은 점차 낮아지는 흐름을 보였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의 의뢰로 여론조사 기관 IFOP가 28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RN의 극우 동맹 지지율은 36.5%로 1위를 기록했다. 이에 맞서 좌파 진영 연합인 신민중전선(NFP)의 지지율은 29%, 집권 여당인 르네상스의 연대 세력인 앙상블은 20.5%로 3위에 그쳤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전체 의석수 577석 가운데 RN과 그 연대 세력은 225∼265석, NFP는 170∼200석, 앙상블은 70∼100석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에서는 일찌감치 르네상스가 판세를 뒤집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조기 총선은 마크롱 대통령이 9일 유럽의회 선거 결과 RN이 31.5%의 득표율로 압승하자 의회를 전격 해산하면서 치러지게 됐다. 유럽 전역에서 불고 있는 극우 확산을 막기 위한 승부수였지만 지지율이 바닥인 상황에서 대권까지 빼앗길 수 있는 도박으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 선거는 국회의원을 뽑는 과정이지만 사실상 국회 다수당에서 정부 운영권을 쥔 총리를 배출한다는 점에서 총리 선출 선거로 여겨진다. 투표 결과 RN이나 NFP가 다수당을 차지할 경우 마크롱 대통령은 남은 임기 내내 다른 당 출신 총리와 동거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역대 4번째이며, 시라크 대통령-리오넬 조스팽 총리(1997∼2002) 정부 이후 27년 만이다.
RN의 승리가 점쳐지는 가운데 조르단 바르델라 RN 대표가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과반수인 289석을 확보해야 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총선에서 지더라도 대통령직 사임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동거 정부가 들어설 경우 추진 중인 개혁안은 무산되거나 방향 수정이 불가피하다. 자칫 차기 대선에서 르펜에게 대권을 내어줄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한편 이날 프랑스 내무부는 중간 투표율이 오후 12시 기준 25.9%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2022년(18.43%) 중간 투표율을 웃돌 뿐 아니라 20여년 간 투표율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이에 따라 올해 투표율은 2022년 총선(47.5%)보다 높은 60%대 중후반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돼 1차 투표에서 다수의 당선자가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1차 투표에서 당선되려면 지역구 등록 유권자의 25% 이상, 당일 총투표수의 50% 이상을 득표해야 한다. 당선자가 나오지 않으면 7월 7일 2차 투표가 치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