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연장은 미봉책…일부 상환받고 매출 인센티브 늘려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소상공인 종합대책
채무재조정 등에 24조 배정
25조중 96% 금융지원 투입
매출 확대 뒷받침 방안 부족
'다산다사' 구조서 벗어나게
자영업 구조조정 본격화 필요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 발표’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내놓은 25조 원 규모의 소상공인·자영업자 종합 대책은 고금리·고물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숨통을 틔워주자는 게 목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방안이 정부의 고육지책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묻지마식 대출 연장을 통한 부실 연기보다는 일부는 상환을 받고 매출을 늘리는 자영업자에게 인센티브를 몰아주는 식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고통스럽지만 자영업 구조조정을 본격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번 소상공인·자영업자 종합 대책에는 새출발기금 10조 원 확대와 5조 원 규모의 지역신용보증기금 전환보증 신설 등에 총 24조 원이 배정됐다. 전체 25조 원 중 재정·세제 지원에 쓸 1조 원을 제외하면 96%는 모두 금융 지원에 투입하겠다는 의미다. 종합 대책보다는 금융 대책에 가깝다.


구체적으로 보면 정부는 채무상환 능력이 크게 떨어졌거나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자영업자의 채무를 일부 탕감해주는 새출발기금 규모를 기존 30조 원에서 40조 원으로 확대했다. 새출발기금을 신청할 수 있는 자영업자의 사업 영위 기간은 기존 2020년 4월~2023년 11월에서 2020년 4월~2024년 6월까지로 늘렸다. 신청 기한도 2026년 12월까지도 기존보다 1년 2개월 더 연장했다. 정부는 이번 확대를 통해 30만 명이 더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가 ‘채무 걱정 덜어드림’ 3종 세트로 이름 지은 금융 지원 대책도 발표됐다. 소상공인진흥공단으로부터 돈을 빌린 이들은 다음 달부터 업력이나 대출 잔액 제한 없이 상환 기간 연장을 신청할 수 있게 된다. 연장 기간도 기존 최대 4년에서 5년으로 늘린다. 연장 시 가산금리는 0.6%포인트에서 0.2%포인트로 낮아진다.


다음 달 5조 원 규모 지역신보 전환보증이 신설되면서 지역신보 보증부 대출을 이용 중인 소상공인은 대출 상환 기간을 최대 5년으로 연장할 수 있게 된다. 신용점수 919점 이하 소상공인·자영업자는 금리 연 7% 이상의 사업자대출뿐만 아니라 개인 신용대출(1000만 원 이내)까지 상환 기간 10년, 연 4.5%짜리 저금리 상품으로 대환이 가능해진다. 이 같은 금융 지원 3종 세트를 통해 정부는 최대 82만 명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또 2.5~3% 수준이었던 외식 업계의 농산물 구매자금 융자 금리를 올해 하반기부터 1%포인트 인하하고 저신용 소상공인 정책자금 지원 대상 공급 규모도 기존 4000억 원에서 6000억 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지원 대상 기준도 완화한다. 이를 모두 포함해 정부가 예상한 신규 금융 지원 규모는 새출발기금을 제외하고도 14조 원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책이 ‘언 발에 오줌누기’식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출을 받은 뒤 갚지 않으면 소상공인은 빚을 탕감해준다는 식의 인식이 생기는 것은 곤란하다”며 “열심히 일하고 사업을 키울 만한 인센티브가 생기도록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이번 대책에 매출 확대를 지원할 만한 방안이 부족해 보인다는 얘기도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지속적으로 수익을 일으켜 생존하려면 비용 절감보다 매출 확대가 훨씬 중요한데 금융 지원, 전기료·배달료 지원 등 이번 대책은 비용을 줄여주겠다는 대책만 눈에 띈다”며 “이는 결국 정부가 산타 할아버지 역할만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계속되는 대출 만기 연장보다는 일부라도 상환을 받는 게 낫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를 통해 질서 있는 구조조정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사정이 어려운 차주더라도 최대한 상환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에 금융 지원을 하더라도 일부 원금을 상환하거나 일정 요건을 갖춘 소상공인으로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홍기 한국경제학회장은 “상환 연장 등으로 문제를 연기하는 것은 미봉책이며 경쟁력 있는 업체는 빨리 들어오게 하고 떨어지는 업체는 빨리 정리를 하도록 유도해 많은 이들이 창업을 하고 또 문을 닫는 다산다사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