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Insight] "은행탓 말고 대출정책 일관성 지켜야"

◆가계빚 급증 부른 엇박자 정책
당국, 스트레스 DSR 2단계 유예
은행과 사전 논의 없어 혼란 가중
금감원 "규제 기조는 변화없어"
은행들 "어느장단 맞춰야할지…"

“저희도 사전에 통보받은 것이 없습니다. 준비 다 해놓았는데 갑자기 정책이 바뀌니 당황스럽네요.”


지난달 25일 금융 당국이 스트레스 총부채원리상환금비율(DSR) 2단계 적용을 2개월 유예하기로 한 날,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정부의 발표에 의아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은행 관계자들은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은행 입장에서는 “왜 갑자기 대출 한도가 줄었느냐”는 고객의 항의를 당장 받지 않아도 되고, 평소대로 대출 업무를 하면 그만이니 큰 혼란은 없었다. 하지만 가계대출 관리의 변곡점이 될지 모르는 핵심 정책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가계대출 ‘현장’인 은행이 배제됐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당국이 지시하면 은행은 따르면 된다는 의미인가”라는 한 금융권 관계자의 한숨이 전체 금융권의 감정을 대변하는 듯 보였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급증하고 있는 가계대출 문제에 대한 금융 당국의 대책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락가락한 정책으로 가계대출 급증의 원인을 정부가 제공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5월 가계대출은 전월보다 5조 4000억 원 증가해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 만에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증가세를 이끈 것은 저금리 정책 모기지 상품인 디딤돌(주택 구입용) 대출과 버팀목(전세자금용) 대출이었다. 실제 최근 몇 달간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크게 늘었지만 신용대출 등은 안정적으로 유지돼왔다.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5월 가계대출 증가 원인 분석에도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동산 수요가 꿈틀거린 영향도 있지만 자금 공급에서 가계대출 증가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DSR 2단계 유예는 오락가락한 금융정책의 결정판이다. 이 정책은 대출 한도가 1000만 원가량 줄어들어 가계대출을 관리하기에 효과적인 수단이다. 시장은 당초 시행 예정이었던 7월 이전에 대출을 받기 위한 수요가 크게 높아져 6월 가계대출 수요도 함께 늘었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취약 차주의 어려움”을 이유로 느닷없이 시행 시기를 두 달 미뤄버렸다. 결과적으로 시행 시기를 유예한 것은 6월 가계대출 ‘막차 수요’를 부추긴 꼴이 됐다. 실제 6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가계대출은 전월에 비해 5조 8467억 원이나 늘었다. 은행들은 “스트레스 DSR 2단계 유예가 결정된 후 최근 1~2주 사이에 가계대출 증가세가 몰렸다”고 전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준수 금융감독원 은행·서민금융 부원장은 전날 시중은행의 여신 담당 부행장들을 소집해 “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며 이달 15일부터 은행의 가계대출 현장 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헷갈릴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가계부채를 둘러싼 최근 금융 당국의 갈지자 행보는 정책적 판단 미스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달 2일 임원회의에서 “국지적 주택가격 반등에 편승한 무리한 대출 확대”가 가계대출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사태의 원인이 은행이 무분별하게 가계대출을 늘렸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엿보인다. 곧바로 은행권이 소집돼 회의가 열렸고 시중은행들은 앞다퉈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가계대출 관리 과정에서 배제됐던 은행이 이제는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몰린 상황이다.


가계부채 숫자가 가리키는 원인은 정책 모기지인데 은행에 탓을 돌리는 행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금융 당국은 이제라도 최근 갈팡질팡했던 가계부채 관리 정책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조양준 금융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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