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국회의원·보좌진 등 100여명이 지난 3일 국회 인근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국민의힘이 채상병 특검법 처리를 막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이어가던 바로 그 시점인 데다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의 연임을 앞뒀기에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특히 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청와대 인사들이 이처럼 대거 모임을 가진 것은 처음이다.
4일 정계에 따르면 전날 오후 여의도 국회 앞 한 치킨집에서 청와대 수석·비서관·행정관 출신 100여명이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이 자리에는 윤건영(국정기획상황실장)·한병도(정무수석)·김한규(정무비서관)·이기헌(민정비서관)·권향엽(균형인사비서관)·김태선(행정관)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참석했다. 조국혁신당의 조국(민정수석) 대표와 정춘생(여성가족비서관) 의원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모임은 이진석 전 국정기획상황실장이 주도해 1~2개월 전에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예약 인원은 60명이었지만 100명 넘게 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2022년 5월 문 전 대통령 퇴임 후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대규모로 모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 참석자는 "청와대 정무직 공직자 300여명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 모임이 공지됐다"며 "4·10 총선 이후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여서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김영배 의원은 건배사로 ‘빈체로(vincero·이탈리아어로 승리하자는 뜻)’를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을 제안한 이진석 전 상황실장은 문 전 대통령의 친필 사인이 담긴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를 참석자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일부 인사는 야권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한 참석자는 “친명 의원실에 있는 사람들도 더러 있어 이재명 전 대표 관련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청와대 출신이라고 다 친문은 아니지만, 청와대 출신 행정관 중 많은 분이 조국혁신당에 있는 걸 보고 좀 놀라는 분들도 있었다”며 “참석자 중 친명계 의원실에 있는 분도 더러 있어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당에서 친문계가 소수가 된 단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다만 현역 의원들은 '채상병 특검법'이 본회의에 상정돼 필리버스터가 진행되고 있는 엄중한 상황을 고려해 인사차 방문하고 오랫동안 머물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뒤늦게 참석한 조국 대표도 "공무 탓에 술은 못 마시고 인사만 드리겠다"고 짧게 인사한 뒤 자리를 떠났다.
한 의원은 "필리버스터 정국 탓에 오래 있진 못했다"며 "술도 삼가며 인사만 나눴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친문계는 민주당에서 소수파가 됐다. 비주류가 된 친문계가 이날 대규모 모임을 가진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일종의 집단적 의사표시가 아니겠냐는 목소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