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홍콩의 모습은 강렬했다. 빽빽한 도심, 저녁 8시가 될 때마다 빅토리아 하버에 자리잡은 40곳이 넘는 마천루에서 벌이는 레이저쇼는 홍콩의 자부심 자체였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 5년이 흘렀지만 홍콩의 모습은 여전했다. 홍콩 국경을 넘어 중국 선전으로 갔을 때 그 차이는 더욱 극명해진다. 홍콩만의 특수성은 중국과 홍콩을 섞이지 않게 하는, 동시에 보호해주는 장치가 되는 듯했다.
홍콩은 현대사에서 일부 경제학자들에게는 ‘대안적이고 완벽한 공간’으로 꼽힌다. 대표적인 인물은 신자유주의의 대부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이다. 1970년대 말 미국은 인플레이션에 허덕이고 영국 국민은 노동 쟁의에 지쳐 마거릿 대처를 선택했다.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지정학적 위기가 커지고 있었다. 프리드먼이 보기에 홍콩은 ‘글로벌 자본주의에 가장 적합한 종착지’가 될 운명이었다.
그가 판단한 홍콩의 비밀무기는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곳’이라는 점이었다. 홍콩은 영국으로부터도, 중국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일종의 ‘존(Zone)’이자 섬이었다.
역사학자인 퀸 슬로보디언 미국 보스턴대 역사학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역사를 조명하는 과정에서 홍콩을 비롯한 특정한 구역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민주주의 등 정치의 역학관계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극한의 자본주의적 공간이라는 특성이 있다. 저자는 이를 일종의 균열 자본주의(크랙업 캐피털리즘)로, 주권국가에 ‘구역’이라는 형태로 균열을 내 주권국가의 간섭이나 민주주의의 압력에서 벗어나 자본의 탈출구를 만들려는 움직임으로 설명한다. 크랙업 캐피털리즘, 즉 '균열(crack up)의 자본주의'라 명명한다.
우리나라에도 그 예는 있다. 인천경제자유구역 내의 송도국제도시의 경우 도시 인프라가 스마트 도시로 건설됐고 다른 지역과는 다른 경제 논리로 운영된다.
이 모든 기원은 홍콩 모델로 꼽힌다. 홍콩 모델의 본질은 경제적 자유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최고 수준의 경제 개방과 희소한 토지 가치 상승을 통해 작동하는 전속시장을 이용하기 위해 결속력 있는 기업 엘리트들과 정부가 긴밀하게 공모한 것이 본질이다. 만약 중국의 경제 도약에 쓰인 신비의 명약을 하나만 골라낸다면 그것은 홍콩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쓰였을 정도다.
하지만 현재 홍콩의 모습은 어떤가. 중국으로의 이양 후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중국의 감시는 날로 삼엄해지고 있다. 부의 편중도 심각하다. 상위 10대 부자들이 국내총생산의 35%를 장악했다. 10대 가문은 기업의 3분의 1을 통제하고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게티 등의 연구에 따르면 홍콩 상위 15% 부자들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움직임을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 세계로 눈을 돌리면 홀로 존재하는 구역은 5400여개에 달한다. 지난 10년 사이에 1000개 가까이가 생겼을 정도로 속도도 빠르다. 이런 구역에선 세금이 적거나 없고,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우며 규제도 없다. 무엇보다 민주주의가 없다.
예컨대 프리드먼은 홍콩을 민주주의적 선거가 없기 때문에 의사결정 과정을 방해받지 않고 자본주의를 실천에 옮길 완벽한 그릇이라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민주주의가 없는 공간에 지속가능성은 얼마나 있을까. 저자는 홍콩의 미래가 크랙업 자본주의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