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시청역 앞에서 발생한 역주행 사고로 9명이 숨진 가운데, 급발진이었다는 운전자의 주장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7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4일 경찰은 사고 사흘 만에 입원 중이던 당시 차량 운전자인 차 모(68)씨에게 정식 피의자 조사를 진행했다. 차 씨는 사고로 인해 갈비뼈가 골절돼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있다.
차 씨는 조사 중 “사고 당시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브레이크가 딱딱했다”며 사고 원인으로 차량 급발진을 주장했다. 차 씨는 사고 직후 지인과 언론과의 통화에서 ‘차량 급발진’을 여러 차례 주장했다고 알려졌다. 차 씨의 동승자인 아내도 경찰 참고인 조사에서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며 급발진을 주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사고 당시 급발진 여부를 두고 관심이 쏠렸다. 경찰은 차 씨에게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치사 혐의로 입건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한문철 변호사는 4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만약 급발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무죄가 선고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의 의견은 엇갈린다. 급발진 주장을 부정하는 정황도 속속 발견되고 있다. 경찰은 차량의 사고기록장치(EDR)를 분석한 결과 운전자가 사고 직전 가속 페달(액셀)을 강하게 밟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직후 차량에 브레이크등이 들어오면서 멈춰서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브레이크등이 꺼져 있었다는 점도 드러났다.
스키드 마크가 발견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브레이크가 잘 작동했다는 증거라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최신 차량은 ABS(Anti-lock Braking System)이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어 브레이크가 잘 작동한다면 스키드 마크가 남지 않는다"면서 "현재까지 EDR 데이터를 뒤집을 만한 결정적인 데이터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운전자 입장에 무게를 둔 전문가의 의견도 있다. 류종익 한국교통사고조사학회 사무총장은 "역주행 시작 시점에서 차 속도가 얼마였는지가 중요한 지점인데 현장을 보면 보도 침범 직전 시속 105㎞ 수준으로 140m를 내달린 것으로 보인다. 그 정도 속도가 나오려면 제로백(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걸리는 시간) 수준으로 (액셀을) 밟고 있어야 하는데 40년 경력의 운전자가 그런 선택을 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보도를 벗어난 뒤에는 제동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보행자 충돌이라는 1초 간의 짧은 시간 동안 심경의 변화가 있어 페달을 바꿔 밟은 것으로 보기에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정확한 사고 경위가 밝혀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경찰은 사고 차량의 EDR과 블랙박스, 사고 차량이 들이받은 피해 차량의 블랙박스, 주변 폐쇄회로(CC)TV 등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했는데, 국과수의 분석결과는 한두달이 걸린다. 속도를 낸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시간은 예상되는 상황이다.
경찰은 6일 서울대병원에 방문해 차 씨의 건강 상태를 파악했고, 추가 면담을 추진 중이다. 이어 내주 초에는 두 번째 정식 피의자 조사도 진행 예정이다.
차 씨는 지난 1일 웨스틴조선호텔 지하 주차장을 나가던 중 일반통행 도로를 역주행했다. 이 사고로 사망자 9명, 부상자 6명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