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적힌 분양 홍보지에…22억 지주택 사기범 덜미[수사의 촉]

<7> 경제사건 배후 실체 규명
60대 女 5억 투자사기 당한 사건
경찰 증거 불충분 이유로 불송치
검찰, 압수수색·계좌추적 통해
주범 잡고 추가 피해자도 밝혀내


대구에 사는 60대 여성 A 씨는 지난 2021년 평생을 일궈 마련한 5억원을 지역주택조합 업무대행사 직원 B 씨에게 투자했다. A씨는 지역주택조합 사업에 투자하면 “1년 내 2배로 돌려주겠다”는 B씨 말을 믿었다. 그럴듯하게 꾸며진 사무실과 분양 홍보관도 신뢰를 더했다. A씨는 편안한 노후 생활을 꿈꾸며 전 재산을 투자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업이 진행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사기’에 대한 의심은 짙어갔다. 결국 A 씨는 다음 해 경찰에 B 씨를 고소했다.


B 씨는 경찰 수사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본인은 그저 “‘사업에 투자하면 이자를 지급하겠다’는 또 다른 직원인 C 씨의 말을 피해자에게 전달한 것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진술이었다. 단순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에 모습을 드러낸 C 씨도 발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C 씨는 “최근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서 당장 A 씨에게 돈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혐의를 적극 부인했다. 사건을 단순 민사 문제로 판단한 경찰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불송치 결정을 내리자, A 씨는 이의 신청을 했다.


사건을 맡게 된 대구지검 형사3부 김해중(사법연수원 35기)·조현욱(46기) 검사는 피해 규모가 5억 원에 이르는 사건이 불송치된 것에 의심을 품고 지난해 5월 보완 수사에 착수했다. 사건의 전환점은 A 씨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분양 홍보지였다. 조 검사는 A 씨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홍보지 속에서 C 씨의 이름을 발견했다. 사건과 무관하다는 C 씨의 말과는 달리 사기 사건의 공범일 것이라는 ‘촉’이 발동했다. 경찰 조사 단계에서 B·C 씨가 사전에 말을 맞춰 진술을 한 정황도 드러났다. 지능적 사기 범죄일 것이라는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검찰은 이들이 운영하는 분양홍보관, 분양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는 한편 계좌 추적에 나섰다. 예상대로 사업의 실체는 없었고, 사건의 주범은 C 씨였다.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라던 사업은 최소한의 토지 취득 요건조차 갖추지 못해 지자체로부터 승인이 취소된 상태였다. 특히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차용증과 계좌 내역 등을 토대로 A 씨 이외에도 추가로 5명의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이 입은 피해 액수가 17억 원으로 드러나면서 총 22억 원대 규모의 사기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다. 이들은 범행을 중단해 ‘자금줄’이 막히면 파산할 것을 우려해 계속해서 정상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것처럼 피해자들을 속였다. 또 이들에게서 받은 투자금을 ‘돌려막기’식으로 편취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C 씨는 이렇게 뜯어낸 돈을 수십 억대의 채무 변제와 생활비로 사용하고 있었다. B 씨의 경우에는 피해자에 대한 채무를 갚지 않을 목적으로 수 억 원 상당의 자신의 부동산을 가족의 명의로 빼돌린 혐의(강제집행면탈)도 드러났다.


설상가상 이들은 최근까지도 또 다른 지역에서도 투자자들을 모집하고 있어 피해 규모가 더욱 불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의 요건이 상당히 까다롭고, 길게는 10년 이상 소요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고령의 피해자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사기 피해를 당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검찰은 이들을 지난 4월 12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조 검사는 “장기간이 소요되는 지역주택조합 사업의 특성을 악용한 사기 범죄를 추가 수사를 통해 밝혀낼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민생범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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