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10월 공군은 한달 간 ‘한국형 전투기 KF-X 명칭 공모전’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명칭의 상징성과 호칭 용이성, 의미부여 등을 고려해 심사하고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겠다는 입장도 확인했다. 그 주인공은 오는 2026년 하반기에 전력화되는 한국형 전투기 4.5세대 ‘KF-21 보라매’가 그 주인공이다.
KF는 한국형 전투기라는 ‘Korean Fighter’ 영어 약자다. 21은 ‘21세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풀어보면 ‘21세기 대한민국을 지키는 국산 전투기’라는 것이다. 설계부터 생산까지 국내 기술로 개발한 전투기라는 상징성을 담아 이름을 붙여졌다. KF-21은 ‘보라매’라는 통상명칭으로도 불린다.
공군 항공기 이름은 어떻게 정해지고, 어떤 의미가 담길까.
우리 공군 뿐만 아니라 군용 항공기를 자체 제작하는 미국과 러시아, 유럽, 중국 등은 자국이 보유 운용 중인 전투기, 수송기 등의 기체에 고유명칭과 함께 별칭(통상명칭)을 명명하고 있다. 고유 임무부호 뒤에는 일련번호와 별칭이 붙는다. 고유명칭은 주로 영문자 알파벳과 숫자로 이뤄진다. F-15K, KF-16, KF-21, C-130, KC-330, KT-1 등이 제품 번호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 같은 이유다. 하지만 이 명칭에는 규칙이 있다. 간단한 법칙만 알면 해당 항공기의 성능까지 파악할 수 있다.
앞에 붙는 알파벳은 항공기가 맡는 임무를 나타낸다. A는 공격기(Attacker), B는 폭격기(Bomber), C는 수송기(Cargo), F는 전투기(Fighter), H는 헬리콥터(Helicopter), T는 훈련기(Training)를 의미하고 있다. 예컨대 F-15는 전투기, C-130은 수송기, EA-18는 전자기기라는 것을 의미하다. 여기에 응용이 더해진다. KT-1은 훈련기를 뜻하지만 앞에 ‘K’가 하나 더 붙는데,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훈련기라는 의미다 담겼다. KF-21과 이 같은 맥락이다.
예를 들어 미군 군용 항공기의 경우를 살펴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탱크 킬러로 불리는 공격기 A-10 썬더볼트의 A는 Attack, 폭격기 B-2 스피릿과 B-29의 B는 Bomber, 병력과 화물 수송의 만능 일꾼 C-130 슈퍼 허큘리스 수송기의 C는 Cargo로 명명된다. 또 스텔스 전투기도 맞대결을 꺼려하는 전자전기인 EA-18G 그라울러, E-737 피스아이, EA-6B 프라울러 E는 Electon Suveillance, F-22 랩터와 F-15K의 F는 Fighter, 해상 초계기 P-8 포세이돈과 P-3 오리온의 P는 Patrol의 의미다. 우리 공군 제53특수비행전대 블랙이글스의 T-50의 T는 Trainer, 수직 이착륙 수송기 V-22 오스프리의 V는 Vertical Take off/Landing 등의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물론 앞에 나오는 K가 ‘Korea’를 뜻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KC-330의 ‘KC’는 공중급유 임무가 추가된 수송기라서 K는 ‘TanKer(유조선)’ ‘Kerosene(등유)’ 등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 개발 목적과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개량 등을 거쳤음을 의미하는 요소는 특수전자전 E(Electronic Warfare), 해상초계 P(Maritime Patrol), 정찰 R(Reconnaissance), 대잠전 S(Anti-Submarine) 등이 있다.
또 숫자는 기본 임무별 항공기 채택 순서를 나타내지만 예외가 있다. T-50 계열 항공기의 50은 대한민국 공군 창설 50주년을 의미한다. 고유 임부 부호와 일련 번호 뒤에 붙는 알파벳은 성능 개량 번호로서, 알파벳이 뒤로 갈수록 그 성능이 업그레이드 된 신형 모델이다. 숫자와 붙어 있어 혼동을 피하기 위해 I와 O를 제외한 알파벳 문자를 사용하기도 한다.
숨어진 법칙에 따라 항공기 네이밍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통한 더욱 강력한 상징성을 부여해 항공기 네이밍을 하기도 한다. 실제 우리 공군 항공기의 별칭은 다양한 방식으로 정해왔다. 2019년 전력화된 KC-330의 별칭은 백조자리를 뜻하는 ‘시그너스(Cygnus)’를 붙였다. 총 1860명이 참여한 공군 장병·군무원 설문조사로 선정됐다.
공군 첫 스텔스 전투기 F-35A 역시 공군 내부 공모로 네이밍이 이뤄졌다. F-35A에는 ‘프리덤 나이트(Freedom Knight·자유의 기사)’란 별칭을 부여했다. 이는 스텔스 능력을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기사라는 의미가 담겼다. 같은 기종을 쓰는 미군은 적을 번개처럼 공격한다는 뜻의 ‘라이트닝2’(Lighting2)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독자적인 이름을 붙인 것이다.
F-5의 경우엔 1965년 우리 공군에 도입된 전투기로 ‘프리덤 파이터’란 별칭은 제작사인 미국 노스럽사가 붙였다. F-4 팬텀Ⅱ와 F-16 파이팅 팰컨도 미국 제작사가 정한 별칭을 그대로 쓰고 있다.
정부가 이름을 결정하기도 했다. 우리 공군이 이름을 처음 정한 항공기는 ‘KF-5 제공호’ 전투기다. 우리나라가 첫 면허생산 후 ‘하늘을 제패하라’란 의미로 제공호라는 이름을 붙였다. 별다른 공모절차 없이 정부가 결정했다. 대통령이 직접 이름을 정한 항공기도 있다. 첫 국산 훈련기인 KT-1의 별칭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5년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라’는 뜻에서 ‘웅비(雄飛)’란 별칭을 지어 줬다.
전 국민의 아이디어를 듣기도 했다. 2008년 E-737 항공통제기의 별칭 국민 공모에는 2551명이 참여했다. 마지막에는 인터넷 여론조사를 실시해 ‘피스아이(Peace Eye)’라는 이름으로 정했다. ‘한반도의 평화를 수호하는 감시자’라는 의미다. 피스아이가 항공통제기로서 평화적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으로 대내외적으로 강조하면서도 임무의 포괄적 특성에 가장 부합한 것을 이름으로 부여했다.
다목적 전투기로 공군의 주력기인 F-15K 슬램 이글(Slam Eagle)도 2005년 국민 공모를 통해 명명됐다. 슬램 이글은 ‘타격을 가하다’라는 ‘슬램’과 한미 공군이 함께 쓰는 작전용어 ‘그랜드 슬램(포착된 모든 적기를 격추했다)’에서 착안됐다. 적을 보면 반드시 격추하고, 적 지상전력까지 타격한다는 의미다.
T-50은 대국민 공모로 ‘골든 이글(Golden Eagle)’이란 이름을 받았다. 골든 이글은 맹금류인 검독수리다. FA-50은 ‘파이팅 이글’로 부여됐다.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도 대국민 공모로 정해졌다. 주목한 점은 KF-21은 고유명칭보다 별칭이 주는 무게감이 훨씬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 공군에 ‘보라매’라는 이름 자체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보라매는 태어난 지 1년 안에 길들인 새끼 매를 의미한다. 털갈이하지 않아 앞가슴에 난 털이 보랏빛을 띠어 보라매로 불린다고 한다. 공군은 전투기 조종사로 양성되는 사관생도를 ‘보라매’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