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조원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는 일본의 대형 연기금이 운용 포트폴리오 개편을 앞두고 있다. 최근 엔화 가치가 38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막대한 규모의 자금을 굴리는 일본 연기금이 보유 자산에 변화를 줄 경우 금융 시장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 연금적립금관리운용독립행정법인(GPIF)이 투자 전략 검토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8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1분기 말 기준 운용 자산 규모가 246조엔(약 2113조원)에 이르는 GPIF은 5년에 한 번 투자 전략을 재검토해 포트폴리오 조정에 들어간다. 새 전략은 내년 4월부터 공식 적용되지만 최근 엔화 약세가 두드러진 상황인 탓에 관심이 집중되는 분위기다.
GPIF 보유 자산 중 절반이 달러 표시의 주식과 채권으로 구성된다. 지난 10년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해외 자산 비중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2014년 외국 자산 비중을 23%에서 40%로 확대한 데 이어 4년 전 50%로 끌어올린 바 있다. 이런 조치로 미 증시가 상승하면서 적지 않은 수익을 챙겼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GPIF가 달러 자산을 팔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근 엔화 가치가 크게 떨어진 만큼 시장에서는 달러 자산을 팔고 엔화 자산을 사들여 엔화 가치를 높이는 행보를 보일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무디스애널리틱스의 슈테판 안그릭은 “10년 동안 달러 비축이라는 한 방향으로 이동한 것을 보면 지금은 반대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막대하게 쌓인 달러는 일종의 보험 역할을 하는데 엔화 가치가 추락한 지금 같은 상황에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근 시장 상황을 감안할 때 GPIF의 자산 조정이 시장에 끼칠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진단도 적지 않다. WSJ은 “연금 기금이 자산의 10%를 외화에서 엔으로 옮기면 약 1500억달러(약 207조원)가 이동한다는 의미”라면서 “외환 시장의 규모가 크고 변덕스럽기 때문에 그런 변동이 엔화 가치 하락을 반드시 막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기금 운용 목표가 연금 수급자들을 위한 수익률 추구에 있는 만큼 외환 시장의 변동과 관련해 단기 대응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미야조노 마사타카 GPIF 이사장은 앞서 5일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내년 포트폴리오 조정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며 각 자산의 장기 기대 수익을 분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난 회계연도에 달러와 유로화 대비 엔화 가치가 하락했고, 이는 GPIF의 투자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면서도 “수익률 증대를 위해 엔저를 이용하려 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