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를 중심으로 올해 증시를 달구고 있는 인공지능(AI) 랠리가 반도체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글로벌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TSMC는 웨이퍼(반도체 원판)당 납품 가격 상승 전망에 장중 시가총액 1조 달러(약 1380조 원)를 돌파했고 중앙처리장치(CPU)가 AI 수혜를 볼 것이라는 전망에 힘입어 인텔과 AMD도 급등했다.
8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에서 TSMC는 장 초반 4.8% 급등해 사상 처음으로 시총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이후 주가는 하락해 전 거래일보다 1.43% 오른 주당 186.6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마감 기준 시총은 9678억 달러(1338조 원)로 뉴욕 증시 7위를 기록했다. TSMC는 올해 주가가 83% 이상 올라 삼성전자 시총의 2.5배를 넘어선 상태다.
TSMC는 AI 가속기와 CPU 등 고성능컴퓨팅(HPC) 칩셋과 퀄컴·애플 최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수주를 싹쓸이하며 반도체 공급망을 쥐락펴락하는 ‘슈퍼 을(乙)’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TSMC 3㎚(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은 2026년까지 주문이 밀려 있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웨이저자 TSMC 회장은 납품 가격 인상도 언급했다. 대만 공상시보는 웨이퍼당 가격을 5% 이상, 패키징(CoWoS) 가격도 10~20% 인상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가격 인상 소식에 전날 모건스탠리는 다음 주 TSMC 실적 발표를 앞두고 연 매출 추정치를 높여 잡았고 목표주가를 9% 상향했다. 모건스탠리는 “TSMC가 내년 파운드리 생산능력이 부족할 수 있고 가격 인상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며 “TSMC의 물량 조정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TSMC는 2나노 공정 진입 속도도 빠르다. 이날 자유시보는 TSMC가 다음 주 바오산 팹20에서 2나노 시험 생산에 돌입한다고 보도했다. 올 4월부터 시작한 장비 반입 작업이 예상보다 빠르게 마무리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TSMC의 호실적 전망에 반도체 장비사인 네덜란드의 ASML도 호재를 맞았다. 이날 유럽 증시에서 ASML은 사상 처음으로 장중 1000유로를 돌파했다가 997.9유로에 장을 마감했다. 올해 ASML의 상승 폭은 46%에 이른다. TSMC 이외 반도체주 또한 급등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전장보다 1.93% 오른 5765.20에 마감했다. 엔비디아가 1.88% 상승한 가운데 최근 힘을 못 쓰던 인텔이 6.15%, AMD가 3.95%씩 올랐다. 주요 반도체 기업 중 주가가 내린 곳은 0.6% 하락한 마이크론 정도였다.
월가의 긍정적인 리포트가 주가 상승에 힘을 보탰다. 벤 라이츠 멜리우스리서치 애널리스트는 “인텔·AMD·애플 등이 엔비디아 같은 AI 수혜 기업을 따라잡을 것”이라며 “일부 반도체·하드웨어·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기대치가 낮은 업체에 대한 ‘추격 거래’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던 클라인 미즈호증권 애널리스트는 “인텔 등 반도체 제조 업체에 명확한 쇼트커버 거래가 진행 중”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