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와 경영계가 내년도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에서 30%에 가까운 입장 차이를 보인 것은 매년 심의에서 반복되고 있는 현상이다. 급기야 올해는 노동계가 2시간 만에 최초 요구안보다 무려 절반가량 인상 폭을 깎은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졌다. 우려는 노동계의 급격한 인상론이 최저임금에 대한 현장 수용성을 낮추고 인상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점이다. 노동계가 최저임금 인상을 투쟁화했기 때문에 이 상황은 점점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많다.
9일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노동계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이 최초 요구안으로 10%대 인상안을 제시한 경우는 2020년(적용연도) 이후 올해까지 단 세 차례(2020·2021·2023년)뿐이다. 심지어 2016년에는 79.2%, 2000년에는 69.1%, 2017년에는 65.8%까지 고율 인상론을 폈다.
이 상황은 매년 최저임금 심의를 둘러싼 세 가지 우려를 낳고 있다. 우선 노동계 최초 요구안과 결정된 최저임금 차이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최저임금 추이를 보면 노동계 최초 요구안과 결정된 최저임금의 인상 폭 차이가 10% 밑으로 내려간 경우가 없다. 노동계가 늘 최저임금 결정 과정과 결정 후에도 강한 불만을 표출하는 배경이다. 이는 경영계가 노동계의 과도한 인상 요구를 막기 위해 지나치게 낮은 인상 수준을 고집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경영계는 올해까지 최초 요구안으로 4년 연속 동결을 제안했다. 매년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삭감안을 낸 셈이다.
이런 상황은 최저임금 심의를 비효율적으로 만들고 있다. 노동계는 이날 최저임금위 9차 전원회의에서 최초 요구안으로 27.8%안을 냈다가 불과 2시간 만에 13.6%로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 첫 제시안 자체가 협상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일단 ‘질러 놓고 보자’식의 투쟁적 상징안이라는 얘기다. 동결을 요구했던 경영계는 이날 0.1% 올린 수정안을 제시했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도 지난해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당시 노사는 최초 요구안을 낸 뒤 1~10차 수정안을 제출했다. 다시 최종 제시안을 낸 끝에 표결로 올해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당시 노사는 ‘10원 단위’ 기 싸움을 벌였다. 7차 수정안으로 1만 620원을 낸 노동계는 8차 수정안에서 40원 내린 1만 580원을 제안했다. 경영계도 9795원에서 9805원으로 10원 인상으로 응수했다.
다른 우려는 최저임금이 오른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위 통계를 분석한 결과 1993년 최저임금은 시급 1005원으로 처음 1000원 선을 넘은 이후 3000원 선을 넘는 데 14년 걸렸다. 하지만 3000원 선을 넘은 이후 6000원 선을 넘는 기간은 11년으로 3년 줄었다. 6000원 선에서 9000원 선을 넘는 데는 7년으로 더 빨라졌다.
이는 친노동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과 2019년 최저임금이 각각 16.4%, 10.9%로 두 자릿수 인상이 이뤄진 결과다. 2017년 6470원에서 2018년 7530원으로 오른 후 이듬해 8350원으로 증가했다. 2년 만에 2000원 가까이 오른 것이다. 2007년 12.3% 인상 이후 17년 동안 이처럼 두 자릿수 인상은 단 두 번이다. 이때를 제외하고 최저임금은 적용 연도 2년 이상 1000원 단위 자리가 같았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결과적으로 패착이 됐다는 지적이 경영계를 중심으로 이어졌다. 2020년과 2021년 최저임금은 각각 2.87%, 1.5%로 낮아졌다. 최저임금위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현장 충격을 낮추기 위해 낮은 인상 폭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해석이다. 그 결과 최저임금 1만 원을 목표로 했던 문재인 정부의 연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은 7.2%로 최저임금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던 박근혜 정부의 7.4% 수준에 머물렀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이명박 정부(5.2%)보다 높았지만 노무현 정부(10.6%), 김대중 정부(9%)보다 낮았다. 정부까지 나서 급속하게 올리려던 상황이 되레 인상 폭을 낮춘 부메랑이 된 셈이다.
노동계가 고율 인상을 고집하는 것은 저임금 근로자의 생계와 노동운동 동력 때문이다. 경영계는 노동계가 합리적인 임금 수준을 원하기보다 임금을 올리려는 ‘투쟁’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노동계는 매년 최저임금위가 열리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최저임금 인상 집회를 열어왔다.
올해도 최저임금 결정 전후로 노동계의 하투가 시작된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10일 조합원 10만 명이 참여하는 1차 총파업을 연다. 금속노조는 16일 사용자협의회와 예정된 교섭이 결렬되면 18일 2차 총파업을 벌일 수 있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최초요구안은 저임금 노동자와 가구 생계 안정을 위해 필요한 금액 수준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1차 수정안에서) 경영계가 10원 올릴 때, 1400원을 양보한 부분을 평가하지 않고 지르기식 관행으로 비판한 점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