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은 기업의 생산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파이(기업 이익)’가 커져야 노조가 사측에 요구할 양이 늘고 이 적립된 이익에 대한 협상이 가능한 겁니다.”
지난달 21일 3년간 몸담았던 한국폴리텍대를 떠난 이경훈 운영이사의 또 다른 직함은 전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이다. 노동 현장과 고용정책을 모두 아우른 셈이다. 그는 파업 경고만으로도 산업계가 우려하는 현대차 안에서 투쟁보다 실리를 우선으로 여겼다. 동시에 노조 밖 근로자를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 전 이사는 최근 인천노동복지합동청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노조는 경영의 한 축”이라며 “협조할 때 협조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 전 이사는 2009~2011년, 2013~2015년 두 차례 현대차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노조위원장 연임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현대차 노조원이 한쪽에 힘을 몰아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이 전 이사는 첫 번째 위원장 임기 때 3년 연속 파업 없이 임금 단체 협상을 타결했다.
그는 “1986년 기술직으로 입사했을 때 현대차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 20위권 밖에 있었는데 10여 년 뒤인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가 터졌다”며 “당시 위기 상황이었던 만큼 투쟁보다 실리가 우선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달궈졌던 산업 현장은 IMF의 구조조정이라는 한파로 얼어붙었다. 하지만 현대차는 2000년 글로벌 10위로 올라선다.
노사는 임금 인상 수준을 두고 늘 갈등을 빚고 갈등이 노조 파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올해도 현대차 노사가 파업 직전에서야 임단협 잠정 합의안을 마련한 배경이다. 이 과정은 노조가 파업 없이도 원하는 실리를 얻을 수 있는지 의문을 남긴다. 노동계는 대기업 임금의 절반 수준인 하청업체 노조의 파업이 더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전 이사는 임금 격차 해소를 통해 임금 인상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노조위원장 때 ‘귀족 노조 오명을 벗겠다’ ‘비정규직 교섭을 지지한다’고 강조한 이유다. 그는 올해 5월에 열린 윤석열 대통령 주재 민생 토론회에도 참석해 기업 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노동 소외 계층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이사는 “임금을 낮추자는 (사측의) 요구를 노조가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정부가 사회복지 정책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사회 안전망을 강화해 사용자의 임금 인상 역할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사회복지를 확대하는 대신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안이 가능한가’라는 논의가 가능한 노사정 대화가 필요하다”며 “전문가 그룹이 만든 ‘책상 앞 정책’이 아니라 노동(노조)이 양보하고 설득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전 이사는 사회 안전망 강화를 위해 일하겠다는 소신으로 한국폴리텍대 운영이사직을 맡았다. 폴리텍대는 학위와 직업 교육을 병행하는 교육 훈련 기관이다. 그는 “20년 비보이(남성 춤꾼), 명문대를 졸업한 취업 준비생, 정년 퇴임한 교장 선생님 모두 폴리텍대에서 원하는 자격증을 얻어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며 “고용 노동 정책은 일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