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당직 보상 수가 신설…전공의 연속 근무시간 24시간으로 축소

10병상당 전문의 美 22명 vs 韓 3.3명
빅5 중증환자 중심 진료, 쏠림 완화 의도
병원·환자 수용도는 여전히 '미지수'지적

노연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5차 의개특위를 마치고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빅5’ 등 상급종합병원의 일반 병상을 최대 15% 줄이고 전문의 등 숙련 인력 중심으로 구조를 대수술하려는 이유는 전공의의 과중한 근로에 의존하지 않고도 중증·응급 환자에게 최적의 진료를 제공한다는 상급종합병원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올 초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한 뒤 상급종합병원이 마비 수준에 이르자 기존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환자에 집중하고 동네 병원은 경증 환자에 집중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빅5 쏠림’을 더는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정부는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5차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열고 올 9월부터 3년간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시범사업을 실시한 뒤 제도화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국내 의료기관이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병원, 의원으로 구분되고 상급종합병원으로 갈수록 난이도가 높고 생명이 위중한 환자를 전문적으로 진료해야 하지만 지금까지는 역할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이 바탕이 됐다. 상급종합병원이 다른 의료기관과 비슷한 환자군을 두고 경쟁하며 병상 등 시설과 진료량을 급속히 늘린 결과 고비용의 숙련된 인력을 채용하기보다 전공의들이 당직 등 장시간 근로를 담당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정부는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응급 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반 병상의 감축을 유도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상급종합병원이 병상 확대로 진료량을 늘려온 반면 입원 환자를 관리할 전문의 수는 병상 증가를 따라가지 못해 환자에게 질 높은 의료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병원의 경우 중환자 병상 비율이 17% 수준이지만 우리나라 상급종합병원의 평균 중환자 병상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10병상당 전문의 숫자도 존스홉킨스병원은 21.7명에 달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3.3명 수준이다.


상급종합병원은 지역 병상 수급 현황, 현행 병상 수, 중증 환자 진료 실적 등을 고려해 병원별로 시범사업 기간 내(3년) 일반 병상의 5%~15%를 감축하게 된다




. 상급종합병원이 일반 병상을 감축하는 과정에서 다인실을 2~3인실로 전환하거나 중환자실 등을 확충할 경우 환자에게 중증 중심으로 보다 나은 입원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의 병상당 전문의 기준 신설도 검토하기로 했다.


상급종합병원의 중환자실 수가, 중증수술 수가 등 보상을 강화하는 한편 상급종합병원이 본연의 기능에 적합한 진료에 집중할수록 더 많은 보상을 받는 ‘성과 기반 보상 체계’도 도입한다. 응급 진료를 위한 당직 등 의료진 대기에 대해서도 최초로 시범 수가(당직 수가)를 도입해 보상하기로 했다. 전문의와 간호사들이 응급 진료를 하기 위해 당직할 경우 대기 비용을 건강보험으로 충분히 보상하겠다는 의미다.


인력 구조는 전문의 등 숙련된 인력 중심으로 바꾼다. 중증 환자 치료 역량을 높이기 위해 의사, 간호사 교육·훈련을 강화하고 전문의 중심으로 병원을 운영해 전공의 진료 비중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간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인력 감축이나 무급 휴가 등으로 고용이 단절되지 않도록 병원별로 인력 운영 계획을 수립·이행하도록 했다. 전공의 수련과 관련해서는 주당 근무시간은 80시간에서 60시간, 최대 연속근무 시간은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점차 줄이기로 했다.


정부는 또 상급종합병원이 진료협력병원을 지정해 시너지도 높이도록 했다. 상급종합병원은 시범사업 참여를 신청할 때 권역 내 진료협력병원을 지정하도록 했다. 상급종합병원이 지역 병의원과 협력해 환자 중증도에 맞춰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상세한 의사 소견과 진료 기록이 첨부된 전문적 진료 의뢰 절차를 강화하고 중등증(중증과 경증 사이) 이하 환자는 진료협력병원으로 회송한다. 필요한 경우 상급종합병원을 대기 없이 이용(패스트트랙)할 수 있도록 하는 진료 협력 체계도 강화한다.


‘상급종합병원’이라는 명칭이 서열을 암시하고 의료 전달 체계상 최종 치료를 맡는 역할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 등을 고려해 명칭 개편도 검토한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 지정 시 병원이 제 기능에 적합한 중증 진료를 더 많이 볼수록 유리하도록 전체 환자에서 고난도 전문진료질병군이 차지하는 비율의 하한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시범사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강제성 없이 신청을 희망하는 상급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사업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들이 변화를 수용할지도 미지수다. 이와 관련해 정경실 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장은 “대표적인 상급종합병원 경영진과 사전 논의한 결과 현재 경증 환자를 많이 보고 전공의의 과도한 근무시간에 의존하는 구조에 문제의식을 갖고 개편 방향성에 동의해주셨다”며 “중증 수가 등 보상을 강화하는 한편 소비자단체·환자단체와 의료 이용 행태를 바꾸는 문화 인식 개선 작업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