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년간 달려온 원로배우 "무대에서 죽는 게 꿈이죠"

◆올해 가장 바쁜 여배우 박정자
화제작 '고도' 럭키役 마치자마자
뮤지컬 '영웅'과 '햄릿' 동시 열연
삶의 기초 배우는 연극 매력 강조
다역 노하우 물음에 "늘 긴장해야"

‘햄릿’에서 ‘배우’ 역으로 열연하고 있는 박정자. 사진제공=신시컴퍼니


“모든 연극 배우들의 꿈은 아마 무대 위에서 죽는 것 아닐까요. 저도 그러고 싶어요."


82세 원로 여배우가 천진한 표정으로 ‘꿈’을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다가오는 내일 벌어질 일이 궁금해 죽겠다는 듯 설렘만 가득했고, 무대 위에서 호령하던 호랑이같은 표정은 온데간데 없었다. 이 여배우는 올해 연극계 최고의 화제작 ‘고도를 기다리며’를 끝내고, 15주년을 맞은 뮤지컬 ‘영웅’과 연극 ‘햄릿’에 동시에 출연하고 있는 박정자다.



연극 ‘햄릿’에서 연기하는 박정자의 모습. 사진제공=신시컴퍼니


11일 서울경제와 인터뷰한 박정자는 2024년 한국 연극계에서 ‘가장 바쁜’ 여배우다.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매일 전석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고도를 기다리며’의 ‘럭키’ 역할을 맡아 열연했고, 5월부터는 15주년을 맞은 뮤지컬 ‘영웅’에 출연하고 있다. 또 6월 9일부터 시작한 연극 ‘햄릿’ 무대에서도 그를 만나볼 수 있다.


박정자는 ‘바빠서 힘들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올해는 내 연기 인생에서도 가장 기억될 만한 해”라고 말했다. 동시에 두 작품 무대에 오르는 것은 계획에 없던 일이다. 박정자는 “이런 겹치지 출연은 좋지 않은데…”라면서 운을 뗐다. 그는 “뮤지컬 ‘영웅’에 출연을 결정한 후 ‘햄릿’ 출연 제안이 들어와 두 번을 고사했다”며 “하지만 이렇게 많은 대배우들이 함께하는 작품에 참여할 수 있는 일도 드물기 때문에 결국 신시컴퍼니(제작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두 작품에서 전혀 색깔이 다른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것은 베테랑 배우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후배들에게 알려줄 만한 박정자만의 노하우'를 묻자 그는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데뷔한 1962년부터 62년간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연기한 배우가 긴장을 한다는 말이 낯설다. “이 정도 연기 경력이 있어도 무대에서 긴장을 하느냐”고 묻는 기자에게 그는 “이 나이가 되니까 더 긴장해야 한다”며 “공연장에 들어서서 분장을 하는 순간 바로 그 인물이 돼야 하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자는 세 번째 ‘햄릿' 무대에 오른 햄릿 전문가다. 하지만 매번 맡은 배역이 심상치 않다. 첫 번째 햄릿 무대에서는 오필리어의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그는 “당시에는 1인 4역을 했는데, 그게 너무 재미있었다”며 “뻔하지 않은 역할을 보여주는 게 배우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박정자는 연극을 ‘인생의 기초를 배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연극 배우는 큰 무대에서 자신을 온 힘을 다해 보여줘야하는 직업”이라며 “그것을 위해서 계속 해서 나를 갈고 닦으며 끊임없이 연습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생각은 이번 햄릿에서 ‘오필리어’를 맡고 있는 배우 루나에 대한 칭찬으로 이어졌다. 아이돌 가수 출신 루나가 정극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연극팬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엇갈렸지만, 막상 막이 오른 지금은 호평 일색이다. 박정자는 “루나 배우는 처음 연습 시작했을 때 (연출에게) 엄청 많이 혼났고 선배들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지금 루나 연기를 보라”면서 “우리 햄릿의 원로 연극 배우들과 연극계는 이 작품을 통해 ‘루나’라는 배우를 얻었다”라고 말했다.





“올해 너무 쉬지 못한 것 아니냐”고 묻는 기자에게 그는 “숨이 끊어지면 쉴 수 있는데 지금부터 쉴 생각을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배우가 감히 꿀 수도 없는 꿈이 무대 위에서 쓰러지는 것인데, 신이 과연 나에게 그런 축복을 주실까요"라며 “무대 위에 설 수 있는 날까지 서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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