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마, 너 죽어” 외친 어머니, 아들이 급류 뚫고 구했다

대전 폭우로 주민 36명 고립
4시간여 만에 전원 구조

10일 오전 대전 서구 정뱅이마을이 밤사이 내린 폭우로 잠겨 있다. 연합뉴스

대전 지역에 쏟아진 폭우로 제방이 무너지면서 한 농촌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긴 가운데, 당시 급류를 헤쳐 어머니를 구한 아들 김중훈(59) 씨의 사연이 전해졌다.


김 씨는 1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비가 밤새도록 잠을 못 잘 정도로 시끄럽게 내렸다”며 “전날 새벽 (밖에) 나가보니까 사람이 지나다니지 못할 정도로 (도로가) 강물이 됐더라”고 당시 상황을 돌아봤다.


그때 형수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대피했는데 어머니가 안 보인다. 연락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김 씨는 곧바로 어머니가 사는 정뱅이 마을로 향했다. 그는 “둑이 터져서 물이 동네로 유입되고 있었는데, 민물인데도 그 물이 태평양에서 밀려오듯 파도가 쳤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그 둑에서 어머니 집이 보이는데, 처마 밑까지 물이 차서 ‘살려달라’고 하는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김 씨는 곧바로 물살을 뚫고 어머니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도착한 곳은 어머니 옆집이었다. 그곳에서도 미처 대피하지 못한 아주머니가 목까지 물에 잠긴 채 기둥을 잡고 있었다. 김 씨는 떠 있는 수레를 발견하고 이를 이용해 아주머니를 지붕 위에 올려놓고 어머니에게 향했다.


김 씨는 “어머니가 처마 끝 기둥을 잡은 채 목만 내놓고 버티고 계셨다”며 “제가 가니까 ‘너 죽는다. 오지 말라’고 하셨다”고 했다. 이야기하던 김 씨는 “오지 말라고. 너 죽는다고”라며 어머니가 했던 말을 되뇌며 울음을 터뜨렸다.


김 씨는 울먹이며 상황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지붕을 타고 어머니 쪽으로 넘어갔다. 어머니 집 담이 어디 있는지 잘 아니까 (물 속에 잠긴) 담을 잡고 발을 지탱할 수 있었다”며 “기운이 빠져서 어머니를 못 당기겠더라. 이때 소파 하나가 떠내려왔다. 소파를 이용해 지붕 위로 어머니를 올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붕 위에 올려드린 옆집 아주머니가 자꾸 미끄러지시길래 ‘조금만 버티세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119구조대가 보트를 타고 왔다”고 했다.



10일 새벽 강한 비가 쏟아져 마을 입구 도로가 모두 물에 잠긴 대전 서구 용촌동 정뱅이 마을에서 소방대원들이 주민들을 고무보트에 실어 나르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어머니와 옆집 아주머니를 대피시키고 보니, 두 분이 목만 내밀고 있던 공간이 10여 분 사이에 완전히 잠겨버렸다”며 “10분만 늦었어도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소방본부에 따르면 정뱅이 마을에 고립됐던 주민들은 4시간여 만에 모두 구조됐다. 119구조대는 주민들을 인근 복지관으로 이동시켜 저체온증 등이 오지 않도록 조치했다.


한편 지난 8일 오후 5시부터 10일 오전 5시까지 대전에는 누적 강수량 156.5㎜의 폭우가 쏟아졌다. 이 비로 대전 서구 용촌동 정뱅이 마을 앞 갑천 상류와 두계천 합류 지점 인근의 제방이 10일 오전 4시께 붕괴돼 급류가 마을을 덮쳤고, 27가구에 사는 36명의 주민이 고립됐다.



10일 새벽 강한 비가 쏟아져 마을 입구 도로가 모두 물에 잠긴 대전 서구 용촌동 정뱅이 마을에서 소방대원들이 구출해 낸 송아지가 마을 쉼터에 앉아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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