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무(無)지출 챌린지’가 인기라고 한다. 하루에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이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인증하는 것이다.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무지출을 실천한다. 앱테크를 하거나 각종 모바일 할인 쿠폰 등을 모아 공짜로 물건 사기, 냉장고에 있는 재료만으로 식사를 준비하는 ‘냉장고 파먹기(냉파)’, 오픈 채팅에서 다른 사람들과 지출 내역을 공유하며 절약 방법을 모색하는 ‘거지방’ 활동 등이 대표적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욜로(YOLO), 플렉스(Flex) 등 순간을 즐기며 돈을 쓰고 과시하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 같은 현상은 고물가와 맞닿아 있다. ‘장보기가 겁난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물가가 고공 행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일·채소 등 신선식품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통계청의 6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2.4% 올랐다. 상승률이 둔화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밥상 물가 동향을 볼 수 있는 신선식품지수는 11.7% 올랐다. 배 가격은 139.6% 올라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75년 1월 이후 역대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고 사과값 역시 63.1% 상승했다. 가공식품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계란·식용유·화장지·라면·우유·밀가루·설탕 등 7대 생필품 가격이 지난달 일제히 올랐다.
정부가 물가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수차례 밝혔지만 물가가 잡혔다는 걸 체감하기 어렵다. 애꿎은 식품 업체들만 수시로 불러대며 팔을 비틀어 밀가루·설탕 등 일부 품목의 가격이 내려가기는 했다. 정부는 국제 곡물이나 원당 등 원재료 가격이 내려갔다는 이유로 가격 인하를 요구하지만 인건비·유류비·물류비 등 제반 비용이 뛰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마냥 가격을 인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오히려 정부 눈치를 보며 차일피일 가격 인상을 미루다 더 이상 감내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가격을 올린 경우가 더 많다. 조미김·골뱅이·참기름·초콜릿·커피·치킨·탄산음료 등 전방위로 오르고 있다. 현재 진행중인 낙농가와 유업계의 올해 우유 원유(原乳) 가격 협상에서 원유값이 오를 경우 유제품까지 도미노 인상이 이어지는 밀크플레이션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설탕·밀가루 가격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식품 기업에 가격 인하를 종용하는 정부가 집값 상승은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 아파트값은 16주 연속 올라 이달 둘째 주에는 전주 대비 상승률이 5년 10개월 만에 최대 폭인 0.24%를 기록했다. 집값 상승을 예상한 수요자들이 앞다퉈 빚을 내 주택 구매에 나서면서 지난달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은 5조 3000억여 원 늘며 2021년 7월 이후 최대 증가 폭을 나타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신고가를 다시 쓰는 경우가 늘면서 부동산 시장이 심상치 않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현재의 상승세를 ‘지엽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한다. 과연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에는 전월세만 포함될 뿐 자가 주거비가 포함되지 않는다. 빚을 내서 집을 산 사람이 매달 수십, 수백만 원씩 이자를 갚으면서 집에서 거주하는 상황이 물가지표에 반영되지 않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소비자물가지수에 자가 주거비를 포함해 집값 상승을 반영할 경우 공식 지표보다 인플레이션율이 훨씬 더 올라갈 것이라고 지적한다. 물가가 안정되고 있다는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떤 제품이 됐든 가격이 내려가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벼락거지가 될까 두려워 영끌로 집을 사고 이자 갚느라 허리띠를 조여 매는 이들 입장에서 과자나 라면값이 몇백 원 내려간다고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기업을 압박해 가격을 내리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해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물가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노력도 병행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