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당권경쟁에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는 한동훈·원희룡 후보에 비해 ‘로키’로 대응했던 나경원 후보가 최근 강공 모드로 전환했다. 전당대회 1강인 한 후보를 향한 공세를 강화하는 동시에 원 후보에게는 기존 입장을 바꿔 단일화를 압박하고 나섰다. 선거 초반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나 후보가 친윤(친윤석열)계의 지원 없이도 ‘2위 싸움’에서 우위를 보이자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나 후보는 최근 한 후보에 대한 정밀 타격으로 선거 전략을 바꾼 모습이다. 그 동안 한 후보와 원 후보를 싸잡아 비판했던 것과 달리 주말 동안 나 후보의 메시지는 한 후보에게로 집중됐다.
나 후보가 사흘간 한 후보를 겨냥해 페이스북에 적은 글을 보면 정말 △위험한 후보·우리 당을 맡길 수 없는 후보(12일) △‘이재명 따라하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13일) △‘이재명을 따라하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14일) 등 발언 수위가 점차 거칠어지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원 후보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나 후보는 한 후보의 당권 도전이 ‘대권 디딤돌’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그는 전날 페이스북에서 한 후보에게 “당 대표가 된다면, 대선 출마를 위해 내년 9월 사퇴할 것인가”라고 물으며 “모호한 답으로 뭉개지 마시고, 정확한 답을 달라”고 압박했다. 당헌·당규상 당 대표가 차기 대선에 출마하려면 내년 9월에 사퇴해야 하는데, 이 경우 또 다시 비대위 체제가 불가피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
나 후보는 13일에도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꼬집어 “대권 야욕을 위해 민주당을 사당화하고 일극체제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운을 띄운 뒤 한 후보가 당 대표에 올라 당헌·당규 규정에 손을 대는 상황을 가정하며, “‘임기 연장의 꿈’을 강행할 시 ‘한재명(한동훈+이재명)’이 된다”고 직격했다.
원 후보는 견제가 아닌 ‘흡수’ 대상으로 설정한 모양새다. 앞서 원 후보가 제시한 ‘반한(反한동훈) 연대’ 가능성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나 후보는 최근 원 후보와 힘을 합치는 방안을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다. 나 후보는 13일 경남 창원 당원협의회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원 후보를 향해 “실질적으로 생각이 비슷하다면 거친 싸움을 하는 것보다는 사퇴하시는 게 낫지 않나, 그래서 자연스럽게 저를 도와주시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중심으로 단일화를 이뤄내 한 후보와 맞서야 한다는 논리다.
나 후보의 태도가 바뀐 데는 최근 지지율 상승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국갤럽의 당 대표 선호도 조사(9~11일·전국 유권자 1000명 대상) 결과, 나 후보는 여당 지지층에서 18%의 지지율을 얻어 원 후보(15%)를 제치고 한 후보(57%)에 이은 2위를 기록했다. 직전 여론조사에서 원 후보는 19%, 나 후보는 14%를 기록했지만, 2주 만에 역전 현상이 이뤄진 것이다. 친윤계의 지원이 원 후보에게 향하는 구도에서 자체 역량만으로 상승세를 이끌었다는 점은 나 후보에게 고무적인 요소다.
2위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른 나 후보가 결선 투표를 염두에 두고 승부수를 던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남은 합동 연설회와 TV 토론회에서 원 후보를 향해 더 적극적인 단일화 제안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 후보는 원 후보가 공약한 ‘상향식 공천’을 자신의 ‘트레이드 공약’이라고 소개하며 공통분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는 가상번호 무작위 추출을 통한 전화 조사원 인터뷰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응답률은 11.2%다. 자세한 조사 개요 및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