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후손들이 다음 달 15일 광복 79주년을 앞두고 일본을 찾아 선조들이 활동했던 곳들을 돌아보며 일본 내 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짚었다.
롯데장학재단과 광복회는 이달 8일부터 12일까지 일본 도쿄·도야마·교토·오사카에서 ‘2024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생 해외 역사 탐방’ 행사를 진행했다. 이번 탐방은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생들이 일본 내 한국 독립운동 발생지를 탐방하고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는 차원에서 기획됐다.
롯데장학재단이 주최하고 광복회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생 43명과 장혜선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이승훈 롯데복지재단 이사장, 김능진 광복회 부회장, 윤봉길 의사 손녀인 윤주경 전 국민의힘 의원, 황선익 국민대 한국역사학과 교수 등이 함께했다.
주요 탐방지는 △많은 한국인이 모여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던 ‘2·8 독립운동 만세운동지(도쿄 치요다구 히비야공원)’ △독립선언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2·8 독립선언 기념비(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관터)’ △관동대지진 당시 6661명의 한국인이 학살돼 이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도쿄 스미다구 야히로)’ △윤봉길 의사의 애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윤봉길 의사 암장지적비(가나자와 노다마치)’ 등이었다.
일본 내 독립운동 장소들을 직접 돌아본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느낌은 남달랐다.
독립운동가 부부인 신송식 장군, 오희영 열사의 후손인 허동현(경상국립대 화학과) 씨는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기념비 등은 대부분 외진 곳에 있어 혼자 일본 여행을 왔다면 가보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번에 이봉창 의사 순국지와 윤봉길 의사 암장지 등을 방문해 헌화할 수 있어 정말 뜻깊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신송식 장군은 1941년 중국 일본군 점령지에서 공작 활동과 유격전을 펼쳤고 오희영 열사는 1940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공작 활동을 했다.
1919년 경남 합천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정판백 열사의 후손인 이다현(성균관대 경영학) 씨는 “이번 탐방 행사를 통해 다른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친해졌고 또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공감대도 느낄 수 있었다”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우리 조상들이 자랑스럽고 그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욱 열심히 생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1923년 간토(관동)대지진 당시 많은 한국인이 학살된 장소도 방문해 일본의 만행을 되새기는 한편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한국인을 추모하는 일본 시민단체의 활동도 목격했다. 도쿄 스미다구의 한 주택가에는 관동대지진 한국인 희생자들을 위한 작은 추모비가 있는데 이는 일본의 시민단체 ‘봉선화(호우센카)’가 이곳에 땅을 매입하고 세운 것이다. 추모비를 관리하는 니시자키 마사오 봉선화 이사는 “한국에서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이렇게 찾아와줘서 너무 반갑고 또 일본인으로서 미안한 마음”이라며 “관동대지진 당시 ‘한국인들이 약탈과 방화를 하고 우물에 독극물을 넣었다’는 유언비어가 퍼져 많은 한국인이 학살됐는데 그들을 기억하고 일본이 저지른 악행을 일본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2009년 추모비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1932년 중국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해 일본군 수뇌부를 몰살시킨 윤봉길 의사의 손녀 윤주경 전 의원은 의거 전 사형을 각오했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윤 전 의원은 윤봉길 의사 암장지에 헌화를 한 뒤 “사형 집행 후 할아버지의 시신은 쓰레기장이었던 이곳에 14년간 암매장돼 있었다”며 “감옥에서 일본 간수들에게 천대받고 또 사형장에 끌려가 총살형을 당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아린다”고 했다.
이어 “이곳에서 윤봉길 의사만을 기억할 게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했지만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이들까지 기억해야 할 것”이라며 “조국의 광복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겼을 때도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윤봉길 의사는 암장지 인근 일본 육군 제9사단 연병장(현 육상 자위대 미쓰코우지산 연습장)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윤 전 의원을 비롯한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윤봉길 의사 암장지 옆에 있는 ‘윤봉길 의사 순국기념비’ 앞에서 묵념을 한 뒤 애국가를 합창하기도 했다.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생 해외 역사 탐방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장혜선 이사장은 “이번 역사 탐방은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독립유공자의 숭고한 헌신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며 “일본 곳곳에 퍼져 있는 독립유공자들의 역사적 발자취를 직접 본 후손 장학생들이 선조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이 더해진 것 같아 기대 이상이었다”고 전했다.
롯데장학재단은 2020년부터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 사업을 시작해 올해 3억 원을 포함해 누적 17억 원을 지원했으며 선발된 장학생은 총 243명이다.
롯데장학재단 관계자는 “국내 44명과 미국 거주 후손 2명, 중국 거주 후손 2명에 연간 600만 원, 카자흐스탄 거주 후손 2명에 300만 원, 쿠바 거주 후손 4명에 150만 원을 지원하는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면서 “독립유공자 후손을 대상으로 한 국내 장학 사업 중 가장 넓은 범위의 후손을 대상으로 하며 액수 역시 최고”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