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수도권 아파트 생애 첫 매수자 중 30대 비중이 6년 만에 최고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축 공급 부족 우려가 확산하는 가운데 신생아 특례대출 등 정책금융을 지렛대로 활용해 주택 구입에 나서는 MZ세대가 부동산 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1~6월 수도권의 아파트 등 집합건물 생애 첫 매수자는 총 10만 8924명으로 전년 동기(8만 2987명) 대비 약 31% 증가했다. 연령대별 비중은 30대가 46%로 가장 많았고 이어 △40대(27%) △50대(13%) △20대(9%) 등의 순이다. 특히 30대 비중은 상반기 기준 2018년(46%) 이후 6년 만에 최고치다. 이는 부동산 호황기였던 2021년(42%)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증가 폭으로도 30대 생애 첫 매수자는 지난해 상반기 5646명에서 올해 상반기 9076명으로 61% 늘어 전 연령대 중 1위를 기록했다.
수도권 중 인천 지역에서 올 상반기 생애 처음으로 아파트를 사들인 30대 비중이 47%로 경기(46%)와 서울(43%)보다 높았다. 이는 관련 집계가 시작된 2010년 이후(상반기 기준) 가장 높은 수치다. 서울의 30대 생애 첫 매수 비중도 지난해 40%에서 올해 43%까지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6억 원 초과~9억 원 이하)에 이어 올해 신생아 특례대출 등 9억 원 이하의 주택을 구매할 때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정책금융이 30대의 아파트 매수심리를 자극한 것으로 진단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신생아 특례대출 등 정책대출이 시행되면서 금리 인하 기대감을 과도하게 부풀리며 30대들의 매수심리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저리 대출을 등에 업고 부동산 큰손으로 떠오른 20~30대가 주택 매수에 나서자 서울 일부 지역 중소형 아파트가 속속 9억 원에 ‘키 맞춤’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신생아 특례대출 등 정책금융이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5월 서울 아파트를 매수한 20~30대 중 동대문구 아파트를 사들인 비중은 5.1%로 2020년 1~5월(4.6%)보다 상승했다. 같은 기간 영등포구(4.9%→5.6%)와 강동구(4.6%→5.3%)의 20~30대 매수자 비중도 늘었다. 이는 신생아 특례대출이 가능한 9억 원 아파트가 많은 데 따른 효과로 풀이된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동대문구와 영등포·강동구의 9억 원 이하 아파트 비중은 각각 50%대, 20%대다. 이처럼 젊은 층 매수 증가 폭이 높은 지역은 집값 상승률도 높았다. 올해 1월 첫째 주 대비 7월 첫째 주 영등포구의 아파트 값은 1.43% 올라 서울 평균(0.9%)을 웃돌았다. 강동구(0.85%)와 동대문구(0.73%)도 집값이 상승했다.
반면 노원구는 20~30대의 매수 비중이 12.5%에서 7.3%로 감소했고 도봉구도 5.4%에서 2.6%로 낮아졌다.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지역의 9억 원 이하 아파트 비중은 약 80%에 달하지만 20~30대 매수세가 꺾이면서 아파트 값도 제자리걸음이다.
이는 신축 선호 현상과 함께 신생아 특례대출 등을 활용해 상대적으로 집값이 높은 지역으로 젊은 층의 매매 수요가 쏠린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신생아 특례대출은 2년 이내 출산·입양한 가구에 최저 1%대 금리로 최대 5억 원까지 대출해주는 제도로 올 1월 말부터 시행됐다. 매수 가능 주택 금액은 9억 원 이하다. 보금자리론(6억 원) 등 기존 정부 정책대출보다 담보 주택 금액이 높고 소득 기준도 부부 합산 연 1억 3000만 원으로 완화된 게 특징이다. 올 3분기부터는 소득 기준이 2억 원으로 상향 조정된다.
정책대출을 받기 위해 9억 원 이하 아파트로의 쏠림 현상이 심화하면서 가격을 밀어올리는 ‘키 맞추기’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 시세가 9억 원 이하인 비중은 올해 초 42%에서 지난달 말 41%로 낮아졌다. 은평구는 56.7%에서 54.1%로, 동대문구는 54.7%에서 53.0%로 비중이 작아졌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이들 지역의 지난달 전용면적 84㎡ 기준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8억 원 후반~9억 원 초반대다. 은평구 ‘e편한세상백련산’ 전용 84㎡는 올 3월 7억 4000만 원에서 지난달 8억 7500만 원으로 뛰었다. 동대문구 ‘전농SK1차’ 전용 84㎡도 올해 초 8억 2000만 원에서 이달 8억 7000만 원으로 9억 원에 근접했다. 마포구 상암동의 A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올해 초 상암월드컵파크2단지 20평형대 시세가 8억 원 후반대에 형성돼 ‘신생아 특례대출’을 받을 수 있는 아파트로 각종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이 났고 실제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며 현재는 호가가 11억 원”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과 신생아 특례대출 등 정책대출은 6억 원과 9억 원 등으로 집값을 표준화시키고 이에 호가가 가까운 아파트로의 매수 쏠림 현상을 동반하며 가격을 끌어올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며 “결국에는 정부가 집값에 개입하는 시장 교란 결과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정책대출이 아파트 쏠림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세사기 등 여파에 가뜩이나 빌라 등 비(非)아파트 포비아가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아파트를 선호하는 30대 출산 가구에 저리 대출 혜택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5월 전국 주택 매매 거래량 5만 7436건 중 아파트 비중은 약 75%(4만 3278건)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73%)보다 약 2%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서울 아파트 매물은 8만 1167건으로 올 2월 17일(7만 7627건)보다 약 4.5% 감소했다.
올 1월 말 출시된 신생아 특례대출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신생아 특례대출을 시작한 올해 1월 29일부터 지난달 21일까지 총 2만 3412건, 5조 8597억 원의 대출 신청이 접수됐다. 주택 구입 자금 대출(디딤돌) 신청이 1만 5840건, 4조 4050억 원으로 전체의 75%를 차지했다. 전세자금 대출(버팀목)은 7572건, 1조 4547억 원 규모다. 국토부는 올해 말까지 10조 원의 대출 신청이 들어올 것으로 보고 있다. 신생아 특례대출 수요가 늘면서 집값 상승의 원인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 정부도 예의 주시하는 모습이다. 특히 정부가 저출생 극복 대책의 일환으로 신생아 특례대출을 받을 수 있는 부부 합산 연 소득 기준을 올 3분기부터 2억 원, 내년부터는 2억 5000만 원까지 확대하기로 해 대출 수요 증가로 집값에 더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에 출시된 디딤돌·버팀목 대출 등 서민 정책금융 상품도 올 들어 6월까지 18조 1000억 원이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금융권에서 늘어난 주택담보대출(23조 6200억 원)의 76.6%에 달할 정도로 정책 상품을 찾는 소비자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연 소득 6000만 원(디딤돌 대출 기준)의 소득 조건 등을 만족하면 1~2%의 저리로 자금을 내주다 보니 수요가 몰린 것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최근 부동산 회복세에 저리의 정책자금을 찾는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면서 “대출 조건을 조정하지 않는다면 하반기에도 증가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디딤돌·버팀목 대출은 요건만 맞으면 대출을 내주는 상품이기 때문에 공급 속도를 줄이려면 소득이나 금리 조건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서민의 주거 안정을 해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어 당국은 대출 문턱을 높이는 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