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그곳에선 평안히 쉬고 계신가요? 너무 일찍 가신 선생님을 기억하며 저희는 또 다시 거리로 나왔습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18일 오전 10시 30분, 서이초 순직 교사 1주기를 맞아 서이초에서 진행된 교원 단체 추모 행사에서 순직 교사를 향한 절박한 외침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이날 추모 행사에 참석한 다른 교사들도 절박한 심정을 가감없이 토로하는 모습이었다. 서이초에 모인 100여 명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들은 행진 시간이 다가오자 일제히 검은 비옷을 입고 양 손을 모아 흰 국화 송이를 집어 들었다.
궂은 날씨 속에서 시작된 행진은 서이초에서부터 ‘서이초 교사 순직 사건’을 수사한 서초경찰서 앞까지 이어졌다. 교사들 발걸음엔 절박함이 배어 있었다. 사건 이후 교육활동 보호 관련 법안과 제도들이 속속 마련됐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원도에서 이날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왔다는 이 모(30대) 교사는 “도교육청 차원에서도 교육활동 보호를 위해 카메라와 녹음장치가 있는 기기를 도입하는 등 노력했지만 생색내기에 불과한 것 같다”면서 “원활한 교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교사들의 목소리를 더 듣고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최 모(50대) 교사는 “교육부나 교육청이 학교 현실을 모르고 선언적인 정책만 펼치고 있다"며 "생활지도고시가 만들어지면서 함부로 교사들을 고소·고발하지 못하게 된 것 맞지만, 여전히 이것이 ‘정당한 교육활동이냐 아동학대냐’ 하는 다툼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분리조치도 인력과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한 실효성 없는 이야기일 뿐”이라면서 “국회에서 법이 통과가 된다고 하더라도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예산과 인력이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진 대오가 서초경찰서로 다가서자 인솔 차량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교사들의 목소리를 들은 시민들은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는 교사들의 호소에 집중했다. 보행 신호를 기다리다 행진 대오를 마주한 황종출(78)씨는 감정이 북받쳐 오른 듯 흐느끼는 목소리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에서도 강력히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서이초 순직 교사 1주기를 맞아 진행된 행진은 국회에서 마무리됐다. 이날 국회 앞 집회에 참석한 전종덕 진보당 의원은 ‘각종 법과 제도가 마련됐지만 현장에서 교사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교육활동 보호)절차 등이 선생님들이 동의할 만한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변화가 없는 것”이라며 “학교든 교육청이든 정말 제대로 관리감독 하고 이것이 정착될 수 있도록 부족한 부분은 국회에서도 더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 교사를 꿈꾸는 학생들도 불안감을 드러냈다. 전국 8개 교대와 2개 초등교육과 학생회로 구성된 전국교육대학생연합(교대련)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서이초 사건 1주기 추모 기자회견’을 열고 교대생 700명이 참여한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교대생 97.4%는 서이초 사건 이후 교직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교대생 61%는 “사건 직후 혼란스러웠지만 지금은 교사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교대련은 “교대생들은 불안하지만, 여전히 교사가 되고 싶어 한다”며 “제2, 제3의 서이초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교사를 보호할 체계를 마련하고, 교사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교육 당국에 촉구했다.
예비·현직 교사들의 불안감 호소에 교육 당국도 추가 조치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이날 협의회 총회가 열리는 울산에서 공동 추념식을 열고 교육활동 보호 강화 방안 간담회를 개최했다.
추념식에 참석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정서적 아동학대 요건의 구체화, 교육활동에서의 안전사고 책임 면제 요건에 관한 사항 등 추가적인 법 개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협의회 총회 이후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공식추모행사에서 “선생님이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며 "교실을 지키는 선생님들과 맞잡은 손을 더욱 단단히 잡겠다"고 강조했다.
정치권도 순직 교사를 추모하며 교권 회복을 위해 힘을 쏟겠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교권을 올바로 세우는 것은 우리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라며 "교권 보호 제도가 현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더 세심하게 챙기겠다"고 밝혔다.
교사 출신인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은 "미완의 과제였던 '아동복지법' 개정으로 교권입법을 완수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