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출격”…“비상 출격”
비상벨이 올리고 출격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비상대기실(ALT)에 앉아 있던 전투기 조종사들이 본능적으로 출구를 향해 빠르게 뛰어나가 국산 항공기 ‘FA-50’ 경공격기에 탑승한다. 곧장 활주로까지 이동해 700m를 거침없이 내달리더니 고막을 뚫을 듯한 굉음을 내며 8초 만에 하늘로 날아올라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이달 17일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공군 제8전투비행단(8전비) 전투기 조종사들은 24시간 임무 수행에 매진하고 있었다. 한반도 중·북부 영공 방위를 위해 항시 초계비행으로 경계 작전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도 비상대기 중이던 8전비 전투기 조종사들은 긴급 상황에 따른 ‘스크램블(scramble·비상 출격)’ 명령이 떨어진 순간부터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해 관제탑에 보고를 마치는 실제 상황이 이어졌다. 오산에 있는 공군 중앙방공통제소(MCRC)로부터 적 항공기 전개 방향과 전개 대수 등 정보를 받고 즉시 출격해 전투 준비에 나서는 데 6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긴장감이 감도는 비상대기실은 365일, 24시간 운영된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4명이 1조로 4교대로 움직인다.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에서 적의 움직임이 포착될 경우 경기 오산에 있는 한국항공우주작전본부(KAOC) 내 중앙방공통제소의 명령이 떨어지면 전투기 조종사들은 무조건 6분 내 출격을 완료해야 한다.
언제 비상 출격 명령이 떨어질지 알 수 없는 전투기 조종사들은 항상 비행복(G슈트)을 입은 채 대기실에서 밤을 세워가며 깨어 있어야 한다. 대기실을 벗어날 수 없고 식사도 배달 온 음식을 받아 내부에서 해결한다. 화장실에 갈 때도 항상 보고해야 한다. 짝꿍처럼 정비사들도 함께 365일, 24시간 비상대기실에서 근무한다. 적 도발에 대비해 즉각 대응 전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다.
제203전투비행대대 FA-50 전투기 조종사인 이병하 대위는 “유사시에는 즉각 휴전선까지 날아가 북한 전투기 도발에 대응할 수 있다”며 “국내에서 개발하고 만든 우수한 국산 전투기로 조국의 영공 방위 임무를 수행하는 데 큰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휴전선과 불과 95㎞ 떨어져 있는 8전비는 공군 전략상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에 위치한 기지다. 전투기가 비상 출격하면 군사분계선(MDL)까지 4분이면 도달할 수 있다. 특히 ‘FA-50 경공격기‘와 ‘KA-1 전술통제기’ 등 국산 전투기만으로 최전방 영공 방위 임무를 수행하는 전투비행단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별칭은 ‘명성대’로 불린다.
8전비가 운용하는 주력 기종은 국산 항공기 T-50 훈련기를 기반으로 개발한 FA-50 경공격기 40여 대와 KT-1 훈련기를 기반으로 만든 KA-1 전술통제기 20여 대 등 총 70여 대로 국산 항공기로만 배치된 국내 첫 번째 전투비행단이다.
FA-50 전투기는 최대 속도 마하 1.5, 최장 체공 시간은 2시간이다. 길이 13.14m, 날개폭 9.45m, 높이는 4.94m에 이른다. 공중 요격과 지상 공격 임무를 모두 수행할 수 있다. ‘AIM-9’ 공대공 유도탄을 무장해 적 항공기를 격추할 수 있다. 적 전차나 벙커를 정확하게 파괴하는 매버릭이라 불리는 ‘AGM-65G’와 GPS로 유도하는 합동 직격탄 ‘JDAM’, 사거리 100㎞로 적 장사정포와 갱도를 초토화하는 국산 활강 유도폭탄 ‘KGGB’ 등의 공대지 유토탄을 장착해 지상 목표물을 공격한다.
고속 전술데이터링크(LINK-16)를 갖춰 실시간(real time) 전장 정보 공유가 가능하고 레이더경보수신기(RWR)도 탑재돼 적 공격을 감지한다. 레이더 및 열 추적 미사일을 따돌리는 전자방해책투발장치(CMDS)와 완벽한 야간 작전이 가능한 야간시각영상체계(NVIS)도 장착해 생존 능력 역시 매우 뛰어나다.
KA-1 전술 통제기는 지상군의 활력을 지원하는 근접항공지원(CAS) 임무를 수행한다. 12.7㎜ 기관포와 2.75인치 공대지 로켓탄 등을 무장해 지상 공격도 가능하다. 해군 함정 유도를 받아 적 특수부대의 야간 해상 침투 저지와 저속 무인기 대응 등의 역할까지 맡고 있다. 길이 10.9m, 날개폭 10.3m, 높이는 3.7m에 이른다. 최대 속도는 350노트, 최장 체공 시간은 3시간 30분에 달한다.
8전비의 전투기 정비 격납고는 6612㎡(2000평) 규모로 많은 정비사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꼼꼼하게 정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8전비에 배치된 주력 항공기가 종류별(FA-50·KA-1·T-50B)로 모두 입고돼 부품 정비대대의 야전급 정비(검사)가 한창이었다.
8전비 정비 격납고에는 전투기 6대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공군 전투비행단에서는 부대급 정비와 야전급 정비로 나눠 전투기 기체에 대한 철저한 정비를 주기적으로 실시한다.
부대급 정비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항공정비부대가 실시한다. 항공기의 이륙 직전과 착륙 직후 항공기를 검사하는 최종 기회 점검을 한다.
이륙 직전 항공기는 정비 요원이 확인하고 비행 준비 상태를 최종 점검해 안전핀을 제거한다. 착륙 후에도 타이어를 비롯한 여러 장비들을 점검하고 비행 중 조류 등 이물질과의 충돌 여부도 확인하며 안전 상태를 확인한다.
이민정 부품정비대대 대위는 “정비 요원들의 경우 비행의 시작과 끝을 책임진다는 사명감을 갖고 평소에 임무 숙달 훈련과 정비 능력 향상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꾸준한 교육·훈련을 통해 완벽한 정비 품질을 보장해 무결점 항공작전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정비 격납고를 나와 비행 시뮬레이터 센터로 이동했다. 비행 스케줄이 없는 전투기 조종사들은 평소 이곳에서 훈련을 한다. 실제 전투기와 똑같이 생긴 가상 콕핏에 앉아 비행 절차 및 기술을 숙달하고 기상 악화나 결함 사태 등 접하기 힘든 비정상 상황에 대비하는 능력을 키운다. 동시에 각자 주어진 임무(pre-ATO)에 따라 북한 지역의 공격 목표 상공을 비행하며 작전 수행 능력을 높이고 있다.
공군은 돔 형태의 대형 비행 시뮬레이터와 콕핏 모양의 소형 비행 시뮬레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8전비에 배치된 비행 시뮬레이터 역시 실제 항공기 조종석과 유사한 환경으로 제작돼 전투기 조종사들이 실전적인 환경에서 훈련하는 게 가능하다.
8전비 관계자는 “전투 출격 임무를 맡은 조종사는 하루에 1~2시간 정도의 초계비행을 한 달에 15~20일가량 실시한다”며 “연간 총 200~250시간 정도를 비행하게 되고 이를 통해 완벽한 비행 기술과 전투 기량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눈에 띄는 것은 8전비가 공군 특수비행팀으로 잘 알려진 ‘블랙이글스’의 기지이기도 해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점이다. 블랙이글스는 대대장 지휘 아래 8명의 조종사로 구성돼 있다. 국산 초음속 고등 훈련기 ‘T-50’을 에어쇼용으로 개조한 ‘T-50B’를 운용하며 연 50회에 달하는 특수비행을 선보이고 있다.
8전비는 1979년 8월 ‘제8전술통제비행단’으로 창설해 1988년 8월 지금의 ‘제8전투비행단’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현재 소속된 전투비행대대는 세 개가 있다. 공군 유일의 전술 통제기 KA-1을 운용하는 제237비행대대와 ‘제공호’로 불리는 ‘F-5’에서 FA-50으로 기종을 전환해 전력화한 제103전투비행대대·제203전투비행대대가 있다.
제237전투비행대대는 KA-1 기종 16만 시간, 제103전투비행대대는 FA-50 기종 10만 시간 무사고 비행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대외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북한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무인기를 운용하는 비닉부대인 제288전투비행대대도 소재한 것으로 전해졌다.
8전비의 슬로건은 ‘우리는 한마음! 싸워서 이기자!’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북한이 도발하면 반드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전투비행단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박흥재 제8전투비행단장(준장)은 “대한민국 중북부 영공 방위의 핵심 기지로서 적 공중 도발과 제3국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진입 상황에 우선 대응하고 동·서해 북방한계선(NLL)과 전방 군사분계선(MDL) 상황 발생 때도 대지·대함 공격 능력을 바탕으로 적 위협을 무력화할 것”이라며 “국산 항공기만으로 구성된 최초의 비행단이라는 자부심을 앞세워 전·평시 조국 영공 수호를 위한 굳건한 대비 태세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