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몸집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검은 고양이. 언제나 인간의 손 밑에 있던 고양이가 커다란 눈빛으로 한 소녀를 바라본다. 불안해 보이는 17세 소녀는 고양이를 엄마나 아빠처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개와 고양이, 관상어 등 반려동물을 통해 위로를 전하는 극사실주의 화가 정우재의 개인전 ‘하루빛’이 서울 강남구 아르떼케이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커다란 동물과 17세 소녀가 한 화폭에 담긴 사실적인 회화 21점을 선보인다.
정우재는 인물과 반려동물, 빛과 일상의 풍경 그리고 극사실적인 화법을 통해 환상적인 이미지를 구현한다. 그의 작품 세계는 현실의 결핍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인간의 불안함과 결핍 가득한 정서를 17세 소녀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작품 속 인물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현대인을 상징한다. 수많은 단절과 좌절을 겪은 이 인물은 힘든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 존재다. 그는 도시와 공원, 골목과 놀이터 등 일상의 공간을 자유롭게 거닐다 만난 반려동물을 통해 위로를 얻는다.
공간을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반려동물의 모습은 환상적이다. 반려동물은 인간에게 위로를 주는 존재이지만 기댈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들에게 기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같은 마음을 포착한 작가는 반려동물을 불안한 현대인에게 위안과 치유를 건네는 존재로 구현한다. 개는 관계를, 관상어는 꿈과 희망을, 고양이는 자존감을 상징한다.
작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준 반려견 ‘까망이’와 지내며 현실에서 느낀 결핍이 채워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는 반려동물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랑을 주고받는 대상이지만 결핍의 또 다른 표현이 되기도 한다고 이야기한다.
정우재 작품의 핵심은 동물이기도 하지만 이 동물들을 더욱 반짝이게 하는 건 바로 ‘빛’이다. 그는 사진으로 찍어낸 듯 햇살, 도시의 번쩍이는 불빛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작품 속 일상의 풍경과 빛은 거대한 반려동물과 인물 간의 만남이라는 환상적인 순간을 현실과 연결 짓는 요소이다. 전시명과 작품 제목에 포함되기도 하는 빛은 비현실적인 존재와 현실의 존재인 서로 다른 두 존재를 경계 없이 감싸고, 이질적인 두 존재를 같은 시공간 안에서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요소가 사실적으로 그려졌다는 점이 환상적인 이미지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를 겹쳐 보이게 한다. 처음에는 가장 닮은 모습을 한 인물(소녀)에 우리를 포개어 놓고, 거대한 반려동물을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보게 하며, 그들이 보내는 위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때 느껴지는 정서는 위안이라는 온전한 말로는 담아낼 수 없는 뭉클함이다. 이는 정우재의 환상적인 이미지의 출발점인 결핍이 채움으로 변화할 때 발생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전시는 7월 24일까지.